2015년 여름 청년 한 무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스페인 축구 레전드 수비수인 카를레스 푸욜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전 약속 같은 건 없었다. 어디 사는지 정확한 주소도 몰랐다. 푸욜의 SNS 계정을 통해 그가 바르셀로나 한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사실만 알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기다림이 시작됐다. 외국인이 청담동에 전지현 산다고 강남에서 기다리는 격이었다. 몇 날을 뻗쳤을까. 푸욜이 나타났다.
얼마 뒤 한 인터넷 사이트에 푸욜의 슈팅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 푸욜은 축구 골대 대신 특수 제작된 양궁 과녁을 향해 슛을 했다. 직전 해 은퇴한 뒤 한 번도 축구화 신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였기에 등장만으로 세계 축구팬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푸욜을 시작으로 전 세계 축구선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는 건 똑같았다. 축구선수가 양궁 과녁을 향해 슛을 쏘고, 그렇게 얻은 점수(1점당 1만원)만큼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치료비를 전달했다. 치료비는 협약을 맺은 기업이 담당했다. 그리고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다.
청년들은 여기에 당시 유행하던 릴레이 방식의 기부 캠페인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접목했는데, 푸욜은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위르겐 클롭, 다비드 비야 등을 지목했다. 푸욜 역시 누군가로부터 지목됐는데,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 푸욜과 친분이 있던 ‘후배’ 백승호였다. 세계적 축구 스타들이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 그것도 신박한 챌린지와 함께 등장하면서 팬들은 이를 기획한 청년들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중엔 나도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덤비는 무모함의 원천이 궁금했고, 또 꾸역꾸역 성공해 내는 비결도 궁금했다.
푸욜 영상이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산에 있는 사무실에서 이들을 만났다. 자신들을 사회적 기업 ‘비카인드’라고 소개했다. 힘들다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앓는 소리를 했지만, 재밌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이들의 얘길 들으면서 그 열정에 동화될 정도였다. 그래도 한편으론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란 물음도 따랐다. 기업 후원은 그대로 소아암 환우에게로 간다고 했다. 주 수입원은 영상에 붙는 광고였다. 유튜브 얘길 했던 거 같은데 그때만 해도 유튜브 위상이 지금 같지 않았다.
10여년이 지나 그때 만났던 청년들은 ‘슛포러브’란 이름의 구독자 172만명의 유명 크리에이터가 됐다. 스케일도 커졌다. 지난해와 올해 전 세계 유명 축구인들이 ‘아이콘 매치’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몰려들었는데, 기획부터 선수 섭외까지 슛포러브 역할이 컸다. 아이콘 매치를 주관한 넥슨의 박정무 사업부사장이 “인프라가 확실히 있다 보니까 큰 도움을 받았다”며 콕 집어 언급할 정도다.
그때의 청년들은 지금의 슛포러브를 상상해 봤을까.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모한 도전임을 잘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무모한 도전이 실패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늘 한 번 더 해보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이 묵묵한 걸음이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끝까지 밀어붙여 결과를 낸 사례는 꽤 많다.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해 인류의 이동 수단을 바꿔놨던 라이트 형제가 그랬고, 출판사로부터 수차례 퇴짜를 맞으면서도 원고를 계속 다듬고 다듬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해리 포터의 J K 롤링이 그랬다. ‘무한도전’이 있기 전에 ‘무모한 도전’이 있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사업가들을 만나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무모한 도전이 빛을 보는 그런 순간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황인호 사회2부 차장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