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전쟁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보통 ‘보스톤 차 사건’을 언급한다. 영국 의회가 식민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tea)에 찻값의 10%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기자 미국인들이 1773년 12월,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 선박을 습격해 차 342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바로 한 해 전인 1772년 발생한 ‘파인트리 폭동’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프랑스와 패권 다툼을 벌이던 영국은 전함 건조에 필요한 목재가 부족해지자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스트로브잣나무(white pine)에 눈길을 돌려 일정 지름 이상의 벌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불법 벌목에 대한 벌금을 거부하던 뉴햄프셔 제재소 주인들이 법 집행을 위해 파견된 보안관과 부보안관의 숙소 ‘파인트리 여관’을 기습한 이후 폭동이 퍼졌다.
이 소식은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보스턴 차 사건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미국 독립 전쟁이 시작되면서 영국 해군은 뉴잉글랜드의 목재 공급을 받을 수 없었고, 그 결과 영국 전함은 독립 전쟁 기간 내내 힘을 쓰지 못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결국 미국은 1783년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조금 단순화시키면 미국 독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목재’라고도 할 수 있다.
‘나무의 시대’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동안 간과됐던 ‘목재’의 역할에 주목한다. 식물학과 생체역학 분야의 저명 학자인 영국 헐 대학의 롤랜드 에노스 교수는 목재와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류의 장대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는 “돌, 청동, 철이라는 세 가지 재료를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는 전통적인 서사에 한 걸음 벗어나 보길 바란다”고 말한다.
목재가 인류 역사의 중심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목재 자체의 물리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인류가 가장 먼저 활용한 목재의 특성은 마르면 딱딱해진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을 간파한 초기 인류는 땅을 파는 데 쓸 수 있는 막대기 도구를 만들어 나무의 열매가 아닌 땅속에 파묻혀 있는 새로운 식량원을 획득했다.
보통 막대기 굵기가 2배가 되면 16배 더 단단해지고 8배 더 강해진다고 한다. 이런 막대기를 이용하면 깊은 곳까지 흙을 파낼 수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대표적인 수렵채집 부족인 하드자족 여성들은 지금도 길이 1m가 넘는 막대기 도구를 이용해 야생 덩이 식물인 ‘에크와 하사’의 뿌리를 손쉽게 캐낸다. 워낙 효율적이라 단 몇 시간 만에 무리 전체 하루 필요량의 뿌리 식량을 수확할 수 있다.
마른 목재가 불에 잘 탄다는 또 다른 특성은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밤에 불을 피워 주변 포식자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고, 음식을 불로 요리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음식을 요리해 먹으면서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됐다. 불로 조리된 음식은 씹기 편하고 소화도 잘된다. 생식보다 소화하는 데 에너지는 12%가량 줄고,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남는 에너지는 더 큰 뇌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인류는 나무를 잘라 움집을 만들어 편안하게 밤을 보내게 됐고, 창과 활 등의 무기로 점차 최상위 포식자가 된다.
저자는 목재가 인류의 찬란한 문화를 이끈 주인공이라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부각한다. 목재를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는 금속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레와 선박이 제조됐고,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하고 커다란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구리와 철 등 금속 재료를 얻기 위한 제련 작업에는 장작과 숯에서 얻은 에너지가 필수였다. 또한 목재 펄프에서 나온 종이는 인류의 문화가 꽃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인류가 목재와 목재를 생산하는 나무와 맺어왔던 관계는 어긋나 있다. 저자는 목재에서 얻어 왔던 에너지를 1600년경 석탄으로 보충하기 시작했고 이후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화석연료로 완전히 대체하면서 일어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인류는 이를 진보라고 여겼지만 산업화는 화석연료 에너지 사용량을 지난 200년간 20배 증가시켰고, 그 결과는 기후변화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산업화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자연과 인간을 단절시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나무와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은 이미 포착된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강철과 콘크리트보다 가볍고 단단한 신소재 목재를 개발하고 있다. 신소재 목재로 대체된 건축물은 탄소배출량을 줄여 기후변화를 막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도시의 숲이 제공하는 다양한 이점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도시의 나무는 체감온도와 도시 열섬 온도를 낮춰 냉방비를 절감할 수 있고, 미세 먼지와 도시 소음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심지어 나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감을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단번에 단절될 관계를 회복하기는 힘들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쌓이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저자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가장 폭넓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목재라는 재료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았으며, 지금도 그 영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면서 “우리의 환경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다시 목재의 시대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말한다.
⊙ 세·줄·평★ ★ ★
·'나무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무와 함께라면 행복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무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