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종교·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가장 약한 구성원의 대우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판단할 수 있다’ ‘구악(舊惡)이 제거되는 도덕적 진보를 믿는다’….
평등과 긍휼, 진보의 가치를 담은 이들 문장은 현대 사회의 보편적 상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가 기독교에서 나왔다는 걸 아는 이들은 비교적 드물다.
호주 출신 영국 성공회 목회자인 저자는 현대 사상에 깊숙이 스며든 기독교적 가치에 주목하며 이를 ‘공기’에 비유한다. 공기를 의식하며 호흡하는 사람이 거의 없듯 서구화된 사회를 사는 현대인 역시 대다수가 기독교적 가치관대로 살면서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이처럼 평등 긍휼 계몽 자유 등의 7가지 가치를 다루며 예수가 어떻게 인류 역사를 뒤흔들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긍휼’은 이젠 본능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가치다. 체감하기 힘들다면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한 말을 숙고해보면 된다. 도킨스는 2014년 다운증후군 태아를 놓고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데도 아이를 낳는 건 부도덕하다.” 도킨스의 말에 영국 사회는 술렁였다. “우생학과 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응답”이란 이유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고대 세계에선 지극히 건전한 생각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아이는 부모가 몰래 제거하는 편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고대 세계 이후로 기독교의 약자 보호 문화가 항상 계승된 건 아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독교는 모든 약한 자와 낮은 자, 실패한 자를 편 들어왔다”며 “진화 법칙에 따라 병약한 이들은 소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훗날 유대인 대량 학살의 근거가 된다. 홀로코스트의 주요 설계자인 하인리히 힘러의 말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전혀 없다. 인간도 이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 본성에 반하는, 당대로선 기이했던 기독교적 가치가 어떻게 근대·서구 사회에 정착했는지를 논증하는 책이지만 일방적으로 기독교를 칭송하진 않는다. 다만 이들 가치에서 기독교적 토대를 제거하는 데엔 유감을 표한다. “긍휼과 평등은 많은 경우 ‘포용’과 ‘다양성’이란 명칭으로 불리면서 최고의 이상으로 군림한다. 이런 신념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더는 기독교에 그 근거를 두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곧 가치의 단절을 가져오며 그 결과 “서구 사회는 점점 더 협소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분열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저자의 우려가 기우는 아닌 듯하다. 현재 서구를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분열과 증오는 민주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자가 교회에 주문하는 건 고대 세계에서 그랬듯 “독특한 낯섦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세속적 강은 말라가고 있다. 그럼에도 소망은 있다. 다시 (기독교적) 원천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진보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