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계엄의 강을 건널까

입력 2025-09-20 00:37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6일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차례로 찾았다. 장 대표의 방문 일정이 공개되자 교계에서는 손현보 목사 구속 이후 여당과 정부를 향한 공세에 교회 연합기구의 지지를 더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적어도 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교총에서는 비슷한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종혁 한교총 대표회장은 장 대표를 만나자마자 작정한 듯 발언을 시작했다.

“메모해 온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7만여개 교회 중 6만4000여개 교회가 속해 있는 한교총은 극우나 극좌 모두를 반대합니다. 지난 정부는 무속·사이비 종교와 가까웠으며 군대를 동원한 통치 시도를 했는데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지난 정부의 과오를 잘 극복해 건강한 야당, 수권 정당으로 발전하길 마음 다해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김 대표회장 발언 중에는 여당의 폭주를 막아 달라거나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칭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저지를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발언은 정치적 극단과 지난 정부 실정과의 선 긋기였다.

장 대표의 이어진 발언은 김 대표회장 메시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좋은 야당이 되겠다거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계속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운을 뗀 장 대표는 “대한민국이 어려운 만큼 야당이 유능한 정책 정당으로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답했다.

비공개 만남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공개된 만남에선 ‘비상계엄 책임론’이 쟁점이었다. 기대했던 한교총과의 면담은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진보 성향 교단이 적지 않은 NCCK와의 만남에서도 계엄 문제가 또다시 떠올랐다.

김종생 NCCK 총무가 먼저 덕담을 건넸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가던 중 장 대표가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화가 잘 정착돼 오다) 최근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여러 일이 있었다. NCCK가 100년 동안 관심 가졌던 민주화 이슈를 지금도 여전히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한 게 도화선이 됐다.

김 총무는 “1980년 비상계엄의 피해자가 바로 나인데 40여년이 흐른 지난해 또다시 선포된 비상계엄이 우리 사회를 질곡 속으로 빠트렸다”면서 “‘평화적 계엄’이나 ‘계몽령’이라는 말의 유희로는 안 된다.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어 김 총무는 “기독교인 중 극우 성향이 없는 80%의 지지를 얻는 정당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하면서 장 대표에게 성경을 선물했다. 성경에서 답을 찾으라는 의미였다.

이날 김 총무가 전한 건 또 있었다. 엘리 위젤(1928~2016)이 1956년 쓴 회고록 ‘밤(Night)’도 언급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 홀로코스트의 한복판에 있던 저자는 수용소에 끌려간 첫날 밤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이라고 표현했다. 어린 소년들을 공개처형하고 빵을 더 먹겠다고 친부를 죽이는 아들을 보며 위젤은 하나님을 향한 회의와 절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김 총무는 이튿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책 내용을 길게 소개한 건 교수대에서 죽어가던 피해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했던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면서 “국민의힘이 정치적 지름길 대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잘 찾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고 기독교계를 찾았던 야당 대표는 “계엄의 강을 건너라”는 숙제를 들고 돌아갔다. 보수 교회마저 비상계엄을 심각하게 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날 교회 지도자들이 요구한 건 지름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었다. 지지를 원한다면 먼저 그 강을 건너야 하지 않을까. 교계의 신뢰를 얻는 길, 이제는 국민의힘이 답할 차례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