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을 할 때 깔끔하게 정돈하는 편이 아니다. 책상 위는 늘 작업 도구들로 어질러져 있다. 책은 지그재그로 쌓이고, 방바닥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혼돈이야말로 나의 리듬이다. 어질러 놓고, 마감이 끝나면 한꺼번에 몰아서 치우는 방식.
한창 시툰(시+웹툰)을 그렸을 때, 내 곁에는 늘 맥북과 와콤 태블릿, 210×297㎜ 스케치북이 있었다. 연필로 스케치하고, 붓펜으로 펜선을 따서 포토샵으로 옮겨 그렸다. 그 시절 내 손을 거친 도구들은 단순한 작업 도구가 아니라 지난 시간을 축적하는 매개체였다.
어릴 적에는 물건을 터프하게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은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던 어느 날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문제를 풀다가 틀린 친구가 갑자기 공책을 ‘쫙’ 찢어버렸다. 공기를 찢는 듯한 짧고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공책 귀퉁이를 접어 씹던 껌으로 덮어버리는 대담한 손길까지. 친구의 불량한 모습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묘하게 부러웠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은 “물건을 아껴 써라”였다. 오래 쓰던 물건을 함부로 다루면 죄책감이 먼저 들었다.
얼마 전 처음 시툰을 그릴 때부터 사용했던 태블릿이 더는 작동하지 않았다. 드라이버를 다시 깔고, 업데이트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운 듯, 태블릿은 결국 조용히 멈춰 버렸다. 10년 넘게 쓰던 물건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라 하나의 이별처럼 느껴졌다.
물건을 대하는 태도는 한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 그래서 나는 한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을 신뢰하는 편이다.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은 시간을 오래 붙드는 법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그래서 더 어렵다. 나는 고장 난 태블릿을 쓰다듬듯 바라본다. 스케이트 날이 지나간 아이스링크처럼, 태블릿 패드 위에는 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