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부산에는 어김없이 영화의 바다가 펼쳐진다. 1996년부터 매년 9~10월쯤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다. 30년의 세월을 지나며 때로 거센 파고가 안팎에서 몰아쳐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켰다. 문화 불모지였던 부산은 그사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30회 BIFF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17일 개막해 열흘간의 여정에 돌입했다. 이날 저녁 야외극장에서 열린 개막식은 개막작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의 단독 사회로 진행돼 의미를 더했다. 이병헌은 “30년 전 ‘부산에서 세계와 만나는 영화제를 만들어 보자’고 했던 꿈이 여러분과 함께 30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말했다.
개막식에는 국내외 영화인들이 총출동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메기 강 감독이 참석해 큰 환호를 받았다. 할리우드 배우 밀라 요보비치와 남편인 폴 앤더슨 감독, 일본 배우 와타나베 켄과 사카구치 켄타로 등 해외 스타들은 밝은 얼굴로 레드카펫에 섰다. 배우 하정우, 한효주, 정우, 조우진, 한소희, 전종서와 블랙핑크 리사 등도 자리를 빛냈다.
특별상 시상에서는 대만 출신 실비아 창 감독이 여성 영화인 대상의 까멜리아상을 받았다. 아시아영화인상은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 한국영화공로상은 정지영 감독에게 돌아갔다. 파나히 감독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계속 도전하고 나아가야 한다. 이 상은 그 전선에 있는 모든 독립영화인들에게 바친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감독은 “한국영화가 잠시 위기에 처해있지만 영화인들은 언제나 새롭고 힘차고 바람직한 영화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BIFF의 올해 가장 큰 변화는 경쟁 부문 신설이다. 이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이는 경쟁영화제로 도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심은경 주연의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 수지·이진욱·유지태가 출연한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장률 감독의 신작 ‘루오무의 황혼’, 대만 배우 수치(서기)의 감독 데뷔작 ‘소녀’ 등 14편이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오는 26일 폐막식에서 ‘부산 어워드’를 통해 대상과 감독상, 심사위원특별상, 배우상, 예술공헌상 등 5개 부문 수상작이 발표된다. 영화 ‘곡성’ ‘추격자’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공식 상영작은 241편으로 지난해보다 17편 늘었다. 연계 프로그램 상영작까지 포함하면 64개국 328편이 준비됐다. 해외 영화제서 주목받은 기대작들이 다수 포진했다. 올해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짐 자무시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와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지안프랑코 로시 감독의 ‘구름 아래’ 등이 상영된다. 장준환 감독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의 할리우드판 리메이크작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부고니아’도 주목된다. 세계적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부문’ 초청작은 33편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게스트 라인업도 역대 가장 화려하다. 이탈리아 대표 거장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은 아시아 영화제로는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한다.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왼손잡이 소녀’의 프로듀서를 맡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 션 베이커 감독도 처음 내한한다. 프랑스 대표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사랑을 카피하다’ 이후 15년 만에 부산을 찾는다. 박찬욱·이창동·봉준호 감독 등은 토크 행사를 통해 관객과 소통에 나선다.
부산=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