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의 고리 끊어내야 ‘주택 쇼핑’ 멈춘다

입력 2025-09-19 02:29
왜 우리는 열심히 일해도 내 집을 가질 수 없는가. 저자는 주택 위기를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구조적 원인을 파헤친다. 또한 주택을 상품이 아닌 거주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개혁 방안을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약속은 이제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주요 선진국 모두에 해당한다. 주택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영국 경제학자인 저자는 집값 폭등으로 인한 주택 위기를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구조적인 원인을 파헤치면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집값은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올라간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인구와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전후 복구를 위해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을 채택했고, 주택 문제도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0년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경제 정책들이 대거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과 세금을 줄이고 금융 및 부동산 부문을 포함한 민간 시장을 자유롭게 풀어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담보 대출은 저축대부조합 같은 특수 기관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상업은행으로 확대됐다. 금융 규제가 풀리고 은행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저금리 대출이 보편화됐다. 주택이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금융 상품이자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저자는 “금융 기관이 주택담보 대출을 늘리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주택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더 많은 대출을 받게 되면서 또다시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저금리 대출을 통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된 글로벌 투자자들은 수익률 높고 안전한 상품을 찾아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부동산 시장도 교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중국 투자자들이 2016년 1년 동안 27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의 주택 2만9000채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주택을 투기 대상으로 보고 접근하는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고가의 부동산을 타깃으로 하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현지 주택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규제를 풀고 공급을 늘리면 집값 문제가 해결될까.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매력적인 입지가 본질적으로 한정돼 있다는 희소성과 더 좋은 곳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주택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도 대출이 더 빨리 풀린다면 주택 가격은 오히려 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엄청난 주택 건설 붐이 일었던 아일랜드에서 1997년과 2007년 사이 10년 동안 주택가격은 2배나 올랐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주택이 상품이 아닌 거주를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개혁이 필요할까. 근본적으로 주택과 금융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저자는 우선 주택담보 대출을 엄격하게 통제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주택담보 대출 시장이 유연하고, 증권화가 활발히 행해지고, 고정금리보다 변동 금리가 적용되고, 주택자산 인출이 많은 나라일수록 주택 가격이 높고 변동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주택과 토지 시장 개입도 주문한다. 주택시장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같은 서유럽 국가들을 예로 들면서 주택 소유에 유리한 재정지원이나 세금 혜택을 중단하고 대신 민간 또는 공공 임대 주택 등에 적절한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 소득에 대한 세금 부담을 줄이고 토지 지대에 부과하는 세금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반적인 과세 체계의 개혁 필요성도 언급한다. 무엇보다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기득권에 맞서 주택을 본래의 목적대로 ‘거주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한다. 저자는 “주택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저렴한 주택을 누리는 것이 하나의 ‘권리’라는 담론이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