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청장에 오른 이미선 청장은 취임하자마자 어려움에 봉착했다. 강원 강릉에 재난사태가 선포될 정도의 극한 가뭄이 선포된 것이다. 상황은 제한급수에 이를 정도로 심각해졌다. 이 청장은 지난 8일 강릉의 오봉저수지를 방문해 저수 현황 등을 직접 점검했다. 그는 강원영동 지역에 단비가 내린 날에는 밤새 시간 당 강수량을 확인하며 새벽까지 집무실을 지켰다.
이 청장은 18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진행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호우로 피해가 발생하는 지역이 있는 반면 가뭄이 발생하는 지역도 있는 양극화가 뚜렷이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기상재해를 절실히 체감했다”며 “현재의 기후 상태를 뉴노멀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고기온이나 최저기온 등 기존 ‘극값’ 통계 중심의 분석보다 원인 규명에 기반을 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예보 정확도 향상을 위해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Korean Integrated Model)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KIM을 두고는 “세계 기상학계에서는 KIM을 현대차나 삼성 스마트폰만큼이나 높게 평가한다”고 전했다. 아래는 이 청장과의 일문일답.
만난 사람=이성규 사회부장
-가뭄 피해로 큰 피해를 입은 강릉은 다녀왔나.
“오봉저수지를 다녀왔다. 강릉에 지난 주말 좀 비가 내려서 (다행이다). 실시간으로 저수량도 다 보고 있는 상태다. 비가 내린 후 모여야 하다보니 저수율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아직도 20%가 안돼 가뭄 해결하는 데는 턱없다. 아직 250㎜ 정도는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여성 기상청장이다.
“33년을 몸담았던 기상청을 이끌어 가는 소임이 주어진 데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와 함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상청장의 막중한 책무를 생각하면 개인적인 영광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여름도 기록적 폭우와 폭염이 한반도를 덮쳤다. 이제 이런 기후를 뉴노멀로 봐야 하나.
“최근의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일상화되어 나타나는 현재의 기후 상태를 뉴노멀로 봐야 할 것 같다. 특히 올해 여름은 폭염과 집중호우가 연이어 반복되며 복합재해의 양상을 보였다. 호우로 피해가 발생한 지역이 있었던 반면 강원영동 지역은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는 지역 양극화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뉴노멀 시대에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기상재해를 절실히 체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 있나
“제 임기 중에 마치지 못 할 수도 있지만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기후변화 원인 규명 분석을 꼭 하고 싶다. 현재는 극값 갱신을 중심으로 기상 현상을 설명하다 보니 원인을 묻는 언론 등에 평년 범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상기후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통계 중심에서 벗어나 자연 변동과 인간 활동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올해부터 인위적 영향 진단 기술 개발을 수행하고 있고, 기후변화 원인 규명 분석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을 기획하고 있다.”
-예보 정확성 확보도 중요한 측면이다.
“예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슈퍼컴퓨터만 있지 않다. 여기에 소프트웨어가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KIM이다. 세계에서 9번째로 개발한 자체 수치예보모델이다. 특히 KIM의 해상도는 8㎞로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중기예보센터는 9㎞, 영국은 10㎞, 일본은 13㎞ 수준에 불과하다. KIM은 초단기부터 미래, 혹은 바닷속까지 다 연계해 예보할 수 있는 모델이다. 이런 것을 개발한다는 건 한국의 기술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KIM이 계속 성능을 유지하려면 개발 인력을 유지해야 하고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다. 사업비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관계부처 쪽에 계속 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기상청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분야도 많을 것 같다.
“기상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레이더 관측자료를 학습해 6시간까지 10분 간격으로 강수를 예측할 수 있는 AI 초단기 강수예측모델이다. 또한 AI를 활용해 낮에만 볼 수 있던 천리안위성의 가시채널 영상을 밤에도 선명하게 제공하고 있다. 기상청이 AI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대표 브랜드화를 못 한 것 같다. 좀 체계적으로 관리해 적극 활용하겠다.”
-기후변화로 인해 계절에 대한 전통적 정의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체감하는 계절의 길이가 변화하는 것은 사실이나, 계절의 전통적인 정의를 바꾸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교육, 산업, 농업, 소비, 건강관리, 여가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영향을 주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취임사에서 말한 열대야주의보가 주목받았다.
“열대야는 수면의 질, 삶의 질, 전력 수요 등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기상특보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내년 초에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기상청 내 여러 요직을 거쳤다. 기상행정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면.
“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이 시행되면서 기상청은 기후위기 감시·예측 총괄 기관으로서 관련 기본계획 수립 등을 총괄한다. 기상청이 날씨 예보만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물 부족 등 사회적 부분까지도 이제 총괄 지원하게 돼 있다. 이를 위해 범부처 간 협력 체계를 확고히 할 생각이다.”
정리=김이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