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이 미국발 관세 협상 파동 등을 고려해 경제안보 및 대북 정보 수집을 위한 국가적 정보 역량 강화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정보 수집을 위한 휴민트(HUMINT·인간정보) 역량이 정책 변화와 보안 사고 등으로 크게 약화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란 주요 인사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벽한’ 제거 작전에서 휴민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것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국정원 관계자는 17일 “이 원장 부임 이후 국익과 안보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국가 정보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공습 후 “향후 안보는 무기가 아니라 정보가 좌우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정원도 정보 기능 강화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민트는 인적 네트워크와 대면 접촉을 통한 정보 활동이다. 고전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정보 수집 방식이기도 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 주요국 정보기관이 전 세계에서 휴민트를 운영하는 건 정보 우위 확보가 국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6월 벌어진 이스라엘의 이란 타격에 있어서 정보력의 중요성이 빛을 발했다. 이스라엘은 공습 초기에 이란군 수뇌부와 핵 과학자 20여명을 동시에 제거했다. 모사드 요원들은 작전 전 이란 현지에 잠입해 표적 대상의 거주지와 동선을 파악했고, 자택 침실에 있던 이들을 기습 타격했다.
모사드의 활약이 조명을 받으면서 전 세계 정보기관도 더욱 치열한 정보전 경쟁에 뛰어든 모양새다. 북한 역시 정보력 강화에 열을 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정찰총국에 관련자 추가 교육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의 정보 기능은 최근 수년간 위축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문재인정부 때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고 국내 정보(IO) 부서가 폐지되면서 휴민트의 활동범위가 다소 축소됐다는 것이다. 국정원 출신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우리 휴민트는 여러 정권을 거치며 크게 약화했다”며 “남북 대화 국면일지라도 정보는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발 관세 협상도 국정원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 중 하나다. 최근 국제 정세에서 경제안보의 중요도가 높아진 만큼 국정원도 관련 정보 수집, 대응 방안 마련 등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재명정부의 국정 과제 핵심 로드맵인 ‘123대 국정과제’에도 경제 안보 역량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했다. 관계부처, 경제단체 등이 참여하는 경제안보점검회의(가칭) 정례화도 추진되는 중이다.
국군정보사령부도 최근 휴민트 동력이 크게 약화했다. 지난해 대북 첩보를 담당하는 요원의 신상이 북한에 넘어간 정황이 확인됐다. 신분이 노출된 요원들은 즉시 복귀해야 했고, 활동 재개도 어렵다. 휴민트의 맥이 상당 부분 훼손된 정보사는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가담 의혹을 받으며 조직 자체도 위축됐다.
이 때문에 국정원과 정보사가 손을 맞잡아 정보 기능의 화력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보사가 적군의 부대 이동, 군사자산 배치 등 전력 정보를 확보하면 국정원이 파악한 정치 지도부 동향이나 외교·군사 전략을 접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한 정보부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휴민트는 핵심 전략자산이 됐다”며 “우리 군 역시 휴민트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예슬 송태화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