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을 국내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개막작으로 초청돼 부산국제영화제를 온 건 처음인 데다 30주년이라니 더욱 설렙니다.”
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어쩔수가없다’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1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화는 베네치아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 이어 이날 개막식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영화화한 ‘어쩔수가없다’는 20여년간 일한 제지 회사에서 실직한 가장 만수(이병헌)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하나둘 제거해 가는 이야기다. 박 감독 특유의 세밀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배경으로 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블랙코미디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주요 장면마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등 옛 가요들이 등장해 극에 맛을 더한다.
박 감독은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가 결합하면서 밖으로도, 안으로도 향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며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아주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한 일이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설을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다루는 쇠락한 제지업의 현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 치여 위기를 맞은 영화산업의 현주소와도 겹쳐진다. 박 감독은 “혹자는 종이 만드는 일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주인공들은 인생 자체라고 말한다. 저 역시 2시간짜리 오락거리라 여겨질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 인생을 걸고 일한다는 점에서 쉽게 동기화될 수 있었다”면서 “우리 영화가 늪에 빠진 영화계를 구하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권남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