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권력 서열’ 논란에 대해 17일 “대한민국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 이게 제 대답”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며 국민들에게 울림을 줬고, 법원 내부에서 꾸준히 사법 개혁을 주창했던 그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사법 개혁을 내세우며 사법부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는 여권은 지금의 방식이 자칫 위헌 시비와 정치적 논란만 양산하는 게 아닌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문 전 대행의 발언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너무 현안이 되어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우리 논의의 출발점은 헌법이어야 한다. 헌법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치시면 논의가 더 생산적일 것”이라며 권력 서열 언급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선출 권력이라도 모든 권한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으며 헌법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해온 여당은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며 직접 선출 권력인 입법부가 간접 선출 권력인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고 강조한 뒤 목소리는 더 커지는 양상이다. 문 전 대행이 “사법부의 판결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사법부의 권한은 헌법에서 주어진 권한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존중해야 된다”고 강조한 것은 이에 대한 우려로 보인다.
사법 개혁은 국민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데 지금 여권의 사법 개혁에는 이에 대한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직접 선출 권력인 입법부와 대통령이 중심인 행정부가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식으로 임기가 보장된 대법원장의 퇴진과 탄핵을 거론하는 건 그 자체로 오만하게 보일 여지가 많다. 열렬 지지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이 이해하고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사법 개혁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여권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