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한강버스

입력 2025-09-18 00:40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리조트는 세 기둥 위에 커다란 배가 올라앉은 형상을 가졌다. 57층 높이인 ‘갑판’ 부위에 인피니티풀이 있는데, 몸을 담그면 조금 당황스럽다. 자연스레 시선이 향하는 물의 끝자락이 도시의 빌딩숲을 향해 있다. 바닷가에 있으니 풀의 경계에서 당연히 망망대해 수평선을 바라보지 싶지만, 이 건물은 오션뷰를 과감히 버리고 시티뷰를 택했다. 아시아 금융 허브의 거대 자본이 그려낸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 마리나 베이 측면에서 비스듬히 겨우 바라보던 풍경을, 이 리조트가 바다를 메우고 들어서 정면 뷰로 제공하며 독보적 랜드마크가 됐다.

도시인은 일상에서 늘 도시의 풍광을 보며 살아가지만, 그 시선이 도시를 온전히 담아낸다고 말하기 어렵다. 서울 사람이 체감한 대표적 ‘앵글의 충격’은 서울역 고가도로가 보행로로 변모했을 때였다. 자동차만 다니던 길을 직접 걸어 다니게 되면서 이제껏 볼 수 없던 각도에서 서울 도심을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이 보행로의 개통을 알렸던 사진의 상당수는 그 길을 찍는 대신 그 길에서 바라본 서울역 주변에 앵글을 맞췄다. 만들어진 길을 따라, 정해진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며, 창밖의 제한된 풍경에 익숙해지는 도시에서 낯선 시야의 확보는 새 길의 개통보다 더 큰 사건일지 모른다.

오늘부터 한강버스가 마곡~잠실 구간에서 운행을 시작한다.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뱃길의 시작은 출퇴근 교통난을 해소하는 거였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앵글을 시민에게 선사하는 기회도 될 듯하다. 영국 템즈강의 리버버스로 통근하는 이들이 종종 꺼내는 소감은 “런던을 매일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는 거라고 한다. 이제껏 한강은 강변 공원에서 ‘감상하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큰 강을 끼고 살면서 그리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이제 그 강 위를 지나며 거꾸로 서울을 바라볼 수 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시야가 이 도시에 대해 어떤 생각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을지 궁금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