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추진에 사법부가 내세우는 반박 논리의 핵심은 무작위 사건배당 시스템이 훼손되면 재판의 독립성·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특정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인위적으로 배당하는 전례가 생기는 것만으로 사법부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법원 내부 시각이다.
일선 판사들은 국회가 이를 입법으로 추진할 경우 법원의 재판배당권에 간섭하는 셈이 되고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본다. 한 고위 법관은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무작위 배당은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정신을 지킬 최소한의 수단”이라며 “이는 법원 외부는 물론 내부로부터의 재판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사건 배당 논란 등에 따른 ‘5차 사법파동’을 현재의 전산시스템을 통한 무작위 배당 원칙이 확고히 자리 잡은 계기로 꼽는다. 이명박정부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 전 대법관은 2008년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이 배당에 정치적 고려가 있다고 보고 반발하고 나선 사실이 이듬해 뒤늦게 알려졌다.
대법원은 재배당했다고 해명했지만 신 전 대법관이 당시 판사들에게 판결을 독촉한 이메일 등이 공개됐다. 그러던 중 신 전 대법관에게 촛불집회 관련 사건이 배당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현직 판사들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고 거세게 반발한 일은 사법부 역사에 5차 사법파동으로 남았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등은 신 전 대법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후 법원은 사건 배당 예규를 개정해 ‘배당 룰’에 따라 전자시스템으로 자동배당하도록 변경했다. 법원장이 사건을 마음대로 배당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강화한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 당시 사법농단 사태 때도 배당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법원 내부에서는 무작위 배당을 최우선 원칙으로 강조했다.
민주당은 최근 내란특별재판부 명칭을 ‘내란전담재판부’로 바꿔 부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회 입법이 아닌 법원 내규에 따라 내부에서 법관을 지명하는 방식이니 문제될 게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직 법관들은 민주당이 말하는 전담재판부와 실제 운영 중인 전담재판부는 개념이 다르다고 본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산하 지식재산권 전담재판부 같은 경우 복수로 운영되고 있어 특정 사건이 어디 재판부로 배당될지 미리 알 수 없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신 전 대법관 사태, 사법농단 사태 등을 겪으면서 법관들은 병적일 정도로 재판 독립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서 재판을 하고 있다”며 “친한 법관들도 민감한 사건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내란특별재판부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든 이 원칙에 침해된다면 현직 판사들은 결코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한주 구자창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