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새로운 공간과 경험 속에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는 힐링의 과정이다. 준비 과정에는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 차고, 떠나서 돌아올 때까지 모든 순간이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동 수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여행하는 것은 새로움에 대한 동경으로 출발한다. 기내에서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다. 편하게 가려면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를 선택하면 되지만 비용이 만만찮다. 1960년대까지는 항공기에 지금의 일등석(퍼스트클래스)과 일반석(이코노미클래스)만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대형 항공기가 등장하면서 중간 등급인 이등석(비즈니스클래스)이 생겼다. 퍼스트석과 비즈니스석은 편안한 좌석과 기내 서비스 등 항공 여행 전반에 걸친 서비스가 이코노미석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가격에 따른 ‘계급’이 철저히 구분된다.
미국 서부개척 시대인 1800년대 역마차에도 좌석이 3등급으로 분류돼 있었다. 언덕이나 진흙탕을 만났을 때 일등석 승객은 내릴 필요가 없고, 이등석 승객은 내려서 걸어야 했다. 삼등석 승객은 마차를 밀어야 했다. 1900년대 중반에 도입된 항공기 좌석도 여객선과 역마차 등급에서 따왔다.
일등석 이용률과 수익성이 점차 떨어지자 일등석을 줄이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중에 이코노미클래스에 비즈니스 좌석 서비스를 가미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이 등장했다. 2001년 영국항공이 처음 도입한 뒤 글로벌 항공업계가 따라가고 있다.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높은 운임을 내면 좀 더 넓은 좌석에 앉아 편하게 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이 도마에 올랐다. 대한항공이 좌석 개편을 시행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대한항공은 주력 대형기 ‘보잉 777-300ER’ 11대를 리뉴얼하면서 일등석을 없애고 ‘프리미엄 좌석’을 신설키로 했다. 하지만 기존 3-3-3 구조의 이코노미 좌석을 3-4-3 구조로 재배치하는 것이 문제였다. 3개 영역 가운데 중간 영역에 좌석이 하나 더 늘어나면서 그만큼 내부 공간이 좁아졌다. 앞뒤 좌석 간격은 그대로지만 좌석의 너비는 약 2.54㎝ 줄어들고, 좌석 수는 37석 늘어났다. 당연히 ‘이코노미 좌석은 닭장과 다름없다’ ‘한국인 평균 체격이 커지고 있는데, 거꾸로 좌석은 좁아지는 것은 서비스 퇴행으로 지나친 급 나누기’라는 공분을 샀다. 승객 편의를 포기하고 이윤만 추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몰아치자 대한항공은 결국 좌석 개조를 전면 중단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비행기 ‘입석 좌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최근 비행기 입석 형태의 좌석이 안전 테스트를 통과하며 일부 저비용항공사(LCC)가 2026년부터 이를 선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외신 보도에서 비롯됐다. 이 좌석은 머리·등받이가 있지만 앉는 부위가 비스듬히 바닥을 향하고 있어 착석이 아닌 기대는 형태다. 여기에서도 ‘노예 좌석이냐’ ‘승객이 화물인가’ 등 부정적 반응이 쏟아졌다. 지난달 말 미국에서는 뚱뚱한 승객의 추가 요금 부과 논란이 있었다. 한 LCC가 ‘몸집이 커 옆좌석을 침범하는 승객’은 2026년 1월 27일부터 탑승 전 추가로 좌석 하나를 더 구매해야 한다고 공지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성인과 청소년 모두 비만율이 높은 나라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미국인의 40% 이상이 비만이어서 상당수가 추가 요금을 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항공사의 수익 추구에 승객 입장에서는 좌석 간격을 좁히다 못해 이제 ‘입석’ 또는 좌석 2개 구매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돈 있으면 누워가고 돈 없으면 서서 간다’는 우려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