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일자리 첫걸음 보장’ 대책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모든 청년에게 더 나은 일자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대책은 기획재정부가 2023년 11월 15일 발표한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과 유사하다. 2년 전 기재부 대책은 ‘쉬었음’ 청년의 구직 단념을 예방하는 청년성장프로젝트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번 노동부 대책에도 장기 미취업 청년을 발굴하고 회복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청년이 구직을 포기하지 않고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2023년 대책) ‘청년들이 불필요한 좌절을 겪지 않도록 돕고 실패해도 재도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올해 대책) 등 정책 목표도 비슷하다. 눈에 띄는 업데이트는 청년 5만명에게 인공지능(AI)과 AI 전환(AX) 전문인력 훈련을 제공하겠다는 것 정도다.
두 대책의 또 다른, 명확한 공통점은 발표 시점이다. 2년 전 기재부가 대책을 낸 11월 15일은 통계청이 ‘10월 고용동향’ 자료를 내고 15~29세 쉬었음 청년이 41만4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날이었다. 지난 10일 노동부가 대책을 낸 날도 통계청이 ‘8월 고용동향’ 자료를 내고 15~29세 쉬었음 청년이 44만6000명이라고 발표한 날이다. 부정적인 지표와 비슷한 대책이 같은 날 짝을 지어 발표되는 패턴이 반복된 것인데, 이러면 정부가 진짜 쉬었음 청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진정성이 있다면 앞선 대책이 그간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예컨대 왜 쉬었음 청년이 3만2000명 늘었는지)를 분석하고 반성한 뒤 이를 보완한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그런 절차 없이 발표 주체의 간판만 바꿔 재탕식 대책을 내놓은 것은 청년 고용 실태에 대한 부정적 보도에 물타기를 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청년 고용 악화의 핵심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다. 청년들은 안정적이면서 보수도 괜찮은 일자리를 원하지만 그런 자리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기업들이 점점 더 신입사원 대신 업무 경험이 있는 경력자로 빈자리를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진취적, 모험적 채용을 가로막는 건 사람을 한번 뽑으면 내보내기 어려운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한번 정규직이 되면 생산성과 관계없이 정년을 보장받는 구조가 유지되면서 청년에게 돌아갈 기회는 더 줄어들고 있다.
이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과 권고가 오래전부터 거듭됐지만 변화의 기미는 없다. 한국은행 고용연구팀 서동현 박사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정책 제안서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한국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2007년 76.2%에서 2023년 70.4%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노동 분야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에 관한 국제 비교에서 한국은 계속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일은 청년 고용 문제 해소뿐 아니라 이미 닥친 저성장 위기를 완화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기업은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새 정부가 이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할 것인지 기대를 갖고 주목했지만 지난 16일 확정된 123대 국정과제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는 없었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려면 사회안전망 문제, 기업들의 부담 문제,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 문제, 이런 것들을 터놓고 한번쯤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조속히 구체적인 구조개혁 정책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