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유튜버 최성운(31)씨가 그려온 삶의 궤적은 다양하다. 어릴 적엔 과학을 좋아했던 경영학도였고,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으며, 지금은 콘텐츠 제작자로 일한다. 대표작은 누적 조회수 약 1200만을 기록한 '최성운의 사고실험'(사고실험). 최씨가 기획, 섭외, 진행, 편집까지 전담하는 인터뷰 시리즈다.
무명 PD였던 그의 콘텐츠가 시청자의 이목을 끈 비법은 인터뷰의 밀도였다. 언뜻 교집합이 없어 보였던 최씨의 여러 경험이 힘을 발휘했다. 최씨는 자신의 채널을 찾은 각계 유명 인사에게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답변에도 깊이가 더해졌다. 영상엔 점점 출연자보다 최씨의 질문에 주목하는 댓글이 늘어갔다.
최씨는 유튜브 채널에도 '계속 질문하면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소개글을 걸어뒀다. 다만 그 문장에 특별한 가치를 담지는 않았다고 한다. 질문하는 게 인터뷰의 본질이고, 대화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는 취지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질문할 수 있는 호기심을 유지해야겠다는 개인적 다짐"이라고 설명했다.
구독자 70만 채널에서 신생 채널로
대구에서 자란 최씨는 서울과학고를 나와 서울대 경영대학을 다녔다. 졸업 후엔 미디어 스타트업 ‘EO’에서 유튜브 PD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EO는 스타트업 창업자를 소개하는 10분 안팎의 영상을 제작한다. 최씨도 입사 후 약 2년 6개월 동안 비슷한 영상을 만들다가 2023년 3월, 신규 코너로 대담 형식의 사고실험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으려면 좀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고실험은 최씨가 연출하던 기존의 EO 콘텐츠와 달랐다. 인터뷰 대상만 화면에 나오던 것과 달리 자신이 진행자로 나섰고, 영상 길이도 30분으로 늘렸다. 출연자의 스펙트럼도 넓혔다. ‘시대예보’ 시리즈의 송길영 작가, 김지윤 정치학 박사 등이 출연했다.
EO의 지붕 아래 1년 4개월 동안 사고실험을 운영한 뒤 지난해 10월 독자 채널을 개설했다. EO의 70만 구독자를 뒤로하고 신생 채널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채널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대화 상대도, 시청자도 감동한 ‘질문’
독립한 사고실험의 구독자 수는 약 1년이 흐른 지금, 14만명을 웃돈다. 그동안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던 조수용 전 카카오 대표를 만났고, 아카데미 5관왕을 달성한 영화 ‘아노라’의 션 베이커 감독과도 유튜브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별한 무기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인터뷰하고 싶은 대상에 대해 성실하게 조사하고 공들여 섭외 메일을 썼다.
그런 정성은 질문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질문을 듣던 이동진 평론가가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저에 대해 다 알고 질문해 주셔서”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시청자도 배제하지 않는다. 영상을 보는 이들이 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인터뷰 상대에 대한 배경지식을 질문에 담는다. 최씨는 “시청자와 출연자를 이어주는 전달 매개로서의 질문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촬영 시간은 3~4시간 정도다. 출연자와 ‘라포’(친밀한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약 1시간 분량인 편집본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 긴 시간 동안, 최씨는 질문지 한 번 보지 않은 채 상대와 눈을 맞춘다. 진심이 담긴 태도에 수많은 칭찬 댓글이 달리지만, 최씨는 감사하면서도 그게 이 콘텐츠의 핵심 경쟁력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곳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 정보의 밀도가 얼마나 높냐가 인터뷰 콘텐츠의 본질인 것 같아요. 결국 진행자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나’를 앞세우는 건 경계해야 하는 거죠.”
기획부터 편집까지 홀로 하는 터라 최씨의 주 평균 근무 시간은 60~70시간에 달한다. 최씨는 “편집에만 30~40시간 정도를 쓴다”고 했다. 우선 3~4시간짜리 촬영본에서 불필요한 장면을 제거해 2시간 20분짜리로 만든다. 그다음엔 듣는 시간의 연속이다. 최씨는 “출퇴근할 때 듣거나 잘 때도 틀어놓으며 대화를 다듬는다”며 “상대가 가진 언어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내용의 완성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편집에 시간을 많이 쏟는 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삶과 스토리 감동”
화면 밖에서 최씨는 ‘충실한 PD’다. 시청자가 주목하는 그의 진심 어린 태도만큼이나 직업 PD로서의 전문성도 갖췄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예가 사고실험의 스튜디오로, 특히 초대손님과 마주 앉게 될 테이블을 고를 때 가장 신중했다. EO에서 쓰던 테이블은 90㎝였는데, 장시간 대화를 나누기에 상대가 부담감을 느낄 수 있는 거리라고 판단했다. 반대로 120㎝는 상대의 집중력을 붙들어두기에 너무 멀 것 같았다. 결국 그사이 적정한 수준의 110㎝짜리 테이블로 선택했다.
촬영하다 보면 자신의 전략을 뛰어넘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겸허해지기도 한다. 야쿠르트 방문 판매원인 ‘프레시 매니저’ 서윤정씨를 인터뷰했을 때가 꼭 그랬다. 최씨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직접 쓴 사연을 서씨가 라디오처럼 읽어보는 순서를 마련했다. 서씨의 원래 꿈이 라디오 DJ였기 때문이었다.
서씨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준비한 순서였지만, 연출가로서 극적인 상황이 연출될 거라는 계산된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서씨가 사연을 읽기 시작했을 때, 현장에 감돌던 감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한다. 최씨는 “저는 알량한 기획을 했는데, 인터뷰 상대가 자신의 삶과 스토리로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때 감동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악착같이, 그러나 자연스럽게”
최씨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영화’와 ‘의경 시절’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영화 ‘올드보이’를 본 뒤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키웠다. 타인에게 “나의 꿈”이라고 말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리고, 미국 보스턴대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올 만큼 간절한 목표였다. 그런 열망으로 2017년 대학교 연극반에서 극 한 편을 연출했다.
서울 의경으로 복무했던 2015년부터 2년 동안은 타인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낀 시기였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살인 사건, 5월 28일 구의역 전동차 사건, 10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까지. 최씨는 지금도 이 사건들의 정확한 날짜를 줄줄이 외운다. 자신의 신념과 달리, 의경으로서 분노한 시민들과 대치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이었다. 찰랑이는 감정이 넘칠 것 같아 글로 남겼고, 그 습작들을 모아 2018년 독립서적 ‘필름 자르는 연습’을 냈다.
그러니까 최씨의 삶엔 즐거움이든, 고통이든 늘 이야기가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한 적도 있다. 연극과 책, 두 개의 창작물을 낸 뒤 자신의 이야기가 고갈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였다. 당시 페이스북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휴먼 오브 뉴욕(Human of New York)’ 챌린지를 동아리 멤버들과 서울대 캠퍼스에서 시도했다. 뉴욕 길거리에서 행인을 인터뷰하는 한 유튜버의 콘텐츠를 오마주한 것이다. 그게 최씨의 ‘첫 인터뷰’였다.
과학을 좋아했던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일련의 경험이 엮여 지금의 최씨가 됐다. 최씨는 그런 자신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이동진 평론가님과 대학 시절에도 뵌 적이 있는데, 약 10년 만에 사고실험의 초대손님으로 모셨을 때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되게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그게 최상의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악착같이 노력하겠지만, 타인의 것을 탐하거나 무리하게 성장만을 좇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습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