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내 강성 지지층의 존재감이 뚜렷해지고 있다. 야당과 협상에 나서는 여당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보다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의 주요 의사 결정에 강성 지지층이 반발하기 시작하면 각종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통해 이 같은 목소리가 급속히 퍼지고, 강경파 의원이 이에 동조하면서 당의 의사결정이 뒤집히는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강성 지지층은 강력한 개혁 동력이라는 긍정적 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숙의가 부족하고 감정적이라는 한계도 지닌다. 이들의 존재감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내년 8월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당분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 경선에 나서려는 이들 입장에서는 강성 지지층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심만 좇다가는 장기적으로 민심과 괴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문진석 운영수석부대표는 국회 본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야당 원내 지도부와 만나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협조를 구하는 대신 특검법 개정안에서 야당 의견을 대폭 수용하는 데 뜻을 모았다. 특히 특검 수사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지 않고, 수사 인력 증원도 최소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 발표 후 이날 저녁부터 지지층은 들끓기 시작했다. 내란 종식을 위해서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이 필요한데, 어떻게 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야당과 합의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쇄도했다. 친여 성향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는 김 원내대표의 합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쏟아졌다.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 한준호 민주당 최고위원 등 강경파 의원도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에 동참했다. 결국 다음 날 정청래 당대표가 “어제 협상안은 제가 수용할 수 없었고 지도부 뜻과 다르기 때문에 바로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 여야 합의는 파기됐다.
불과 한 달 전에도 같은 구조의 일이 있었다. 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과 국회 윤리특위를 각각 6명으로 동수 구성키로 합의했는데, 지지층이 반발하자 정 대표가 이를 번복한 것이다. 정 대표는 당대표 당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당원이 걱정하지 않도록 잘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협상에 나섰다가 두 차례나 지지층 반발에 직면한 원내 지도부도 나름의 전략과 사정이 있었다. 특검법 개정의 경우 아직 수사 기간이 남아 있어 필요하면 추후 추가 기간 연장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수사 기간을 다소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더라도 이재명정부 출범에 시급한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합의가 더 중요했다고 판단했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수사 기간 연장은 이후에도 얼마든지 특검법 개정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로도 그런 방안을 생각했었다”면서 “하지만 협상 상대가 있는데 원내의 전략을 미주알고주알 다 공개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토로했다.
국회 윤리특위 구성 역시 별다른 실익이 없었다는 게 원내의 판단이었다. 지지층 요구대로 민주당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식으로 윤리특위를 구성하더라도 실제로 의원직 제명으로 이어지긴 어렵기 때문이다. 의원직 제명을 위해선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윤리특위 통과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윤리특위를 민주당 우위로 구성하더라도 지지층이 원하는 의원직 제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일단 한발 양보하더라도 윤리특위를 구성해 국민이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차례나 지지층 반발로 여야 합의가 파기되면서 결과적으로 여당의 대야 협상력만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원 주권 강화를 내세워 당대표 연임과 집권에 성공한 이재명 대통령 역시 강성 지지층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적인 게 대선 직전 있었던 개헌 논의였다. 대선을 불과 두 달 정도 앞둔 지난 4월 이재명 당시 대표와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러 차례 교감하며 개헌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어느 정도 의견 합치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우 의장은 4월 6일 국회에서 특별담화를 열고 대선·개헌 동시 투표를 공식 제안했다. 우 의장은 “얘기하기 전에 여야 정당 지도부와 여러 차례 논의했다”며 유력 대권 주자였던 이 대표와의 교감도 시사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전 이 대표의 입장이 바뀌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우 의장의 제안에 선을 그었다. 긍정적 화답을 예상했던 의장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전에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 대부분이 개헌 논의에 부정적이자 이 대표가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도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강성 지지층은 우 의장의 개헌 담화 직후부터 ‘개헌 수괴’ 등 도를 넘는 표현을 동원해 우 의장을 강하게 비판했고, 민주당 지도부에도 개헌 논의에 반대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자칫 내란 종식 이슈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였다.
강성 지지층의 존재가 향후 당정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야 협치를 바탕으로 안정적 국정 운영에 집중하려는 현재 권력과 선명성을 앞세워 당심에 구애하는 미래 권력이 충돌할 수 있어서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건강한 당정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지층 내에서도 건전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김판 기자 pan@kmib.co.kr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