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성공의 숨겨진 이유는
각국 분야별 최고 전문가 모아
다양성 발휘하게 했기 때문
인력·자재·부품 모두 가져다
공장 세우는 방식 한계 직면해
현지 시장 장점 최대한 활용해
경쟁력 갖출 대안 필요하다
각국 분야별 최고 전문가 모아
다양성 발휘하게 했기 때문
인력·자재·부품 모두 가져다
공장 세우는 방식 한계 직면해
현지 시장 장점 최대한 활용해
경쟁력 갖출 대안 필요하다
K팝 아이돌을 소재로 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한 영화로 기록되고, 영화 삽입곡들이 빌보드 차드 상위권에 머무르면서 K컬처의 열기가 뜨겁다.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와 삽입곡의 선풍적인 인기로 드높아진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이달 초 언론에 소개된 몇 장의 사진으로 무너져 내렸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공장 건설현장에 투입된 한국 근로자 300여명이 이민법 위반 혐의로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인 채 체포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모멸감마저 느꼈다.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한국 기업의 주먹구구식 경영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고 현 정부의 외교력 부재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 기업들의 설익은 글로벌화 전략이 빚어낸 참사였다는 해석이 보다 설득력 있어 보인다. 현재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서 K팝 장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이른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 점유율도 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파워 배터리 시장 점유율도 10% 정도다. K팝도 한국 자동차와 파워 배터리도 글로벌화 전략을 통해 시장을 개척하면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지만 글로벌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K팝의 성공은 한국의 독특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기획 단계부터 제작, 홍보, 유통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의 모든 단계에 다양한 국적의 전문 인력을 참여시켜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글로벌 관점에서 해석하고 표현함으로써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한국 문화를 매개로 융합되고 응집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케데헌을 통해 볼 수 있듯이 K팝은 이제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 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에 최근 무역 갈등으로 인해 해외투자 특히 미국 투자를 늘려가는 한국의 제조 기업들은 현지 공장 건설 과정에서 필요한 대부분 전문인력을 한국에서 파견한다. 인력뿐만 아니라 필요한 자재와 부품도 대부분 한국 협력 업체로부터 조달한다. 공장이 건설된 이후 제품 생산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현지에 높은 성을 쌓아가는 듯하다.
한국에 비해 제조업 기반이 약한 현지에서 필요한 전문인력과 품질이 보증된 부품을 조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현지 진출 초기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줄이고 생산 공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접근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지 전문인력 확보와 공급망 개발이 이뤄지지 못하면 비용이나 제품 현지화 측면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심화되는 관세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쟁국 대비 가격 열위를 회피하기 위한 ‘울며 겨자 먹기’ 식의 현지 투자가 돼서는 곤란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지 시장의 입지가 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가 돼야 한다.
케데헌의 경우 일본 기업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미국 기업의 마케팅을 기반으로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미국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한국 문화를 한국 출연진이 표현해서 만들어진 글로벌 콘텐츠다. 케데헌의 성공은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인력이 K컬처를 매개로 그들의 다양성을 녹여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케데헌의 성공으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참여 주체는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SPA)이다. 소니는 1980년대 후반 콘텐츠 시장의 메카인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위해서 콜럼비아픽처스의 인수를 통해 미국에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SPE)를 설립한다. 그리고 1990년대 디즈니와 픽사의 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시장이 급성장하자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을 현지에서 내재화하고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SPE를 분사해 SPA를 설립한다.
SPA의 성공 비결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적의 입지를 찾아 미국에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지의 기업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입지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콘텐츠 산업과 다른 제조업의 특성을 간과하기 어렵겠지만, 최근 미국 투자를 늘려가는 기업들은 현지에서 한국의 기업 문화와 업무 방식을 고집하면서 전문 인력과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하기보다는 현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