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친일파 재산 환수 지시에도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 39명에게 수여한 훈·포장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훈 취소 사유가 제한적이고 부처별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행 상훈법상 서훈 취소 근거에는 거짓 공적이나 범죄행위 등만 포함돼 ‘친일 행위’를 사유로 넣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 부처로부터 취합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서훈 현황에 따르면 여태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44명이 총 78건의 훈·포장을 받았으며 39명은 여전히 서훈을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훈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는 2016년 각 부처에 39명에 대한 훈·포장 취소 검토를 요청했으나 9년째 감감무소식이다.
39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훈·포장이 유지되는 이유는 주요 서훈 취소 사유인 ‘거짓 공적’의 판단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친일 행위를 근거로 서훈을 취소하려 해도 부처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다.
국가보훈부의 공적 판단 기준은 ‘보훈’이다. 이에 보훈부는 친일 행위를 거짓 공적으로 본다. 독립운동 이력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던 허영호와 임용길은 2011년 거짓 공적으로 서훈이 취소됐다. 보훈부는 이들의 친일 행위가 보훈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부처의 공적 판단 기준은 모호하다. 예컨대 외교부의 기준은 ‘외교’다. 친일을 했더라도 외교에 이바지했다면 거짓 공적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교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김활란의 수교훈장 광화장(1970) 취소 문제에 대해 유엔대표단 공적 등을 인정하며 “허위 공적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취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기준은 ‘국방’이다. 전쟁 업적이 뛰어나다면 친일 행위와 무관하게 서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백선엽 신현준 이종찬 등의 서훈과 관련해 “6·25전쟁 참전 공적은 친일 행위와 별개 사안”이라며 취소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역시 친일 행위와 서훈 공적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이들에게는 여전히 혈세가 투입된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무공훈장 또는 보국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가유공자 선정 대상자가 된다. 만약 국가유공자로 인정된다면 보훈병원 치료비 인하, 대학 학습 보조비 지급, 본인과 자녀의 취업 가점, 일반직 공무원 특별 채용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김백일 백낙준 송석하 신응균 등은 국립현충원 국립 유공자 묘역에 안장됐거나 수훈자로 분류돼 있다.
이 대통령의 친일파 재산 환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서훈 취소 사유가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상훈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이 의원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훈·포장을 유지하고 혜택을 누리는 것은 정부가 그들의 친일을 용인한다는 의미”라며 “서훈 혜택도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