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16일 전체회의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야당 간사 선임 안건을 표결에 부쳐 부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호선 관례를 강력 반대하며 부결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여야 간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5선인 나 의원을 간사로 내세워 6선 추미애 법사위원장을 견제하려던 국민의힘의 계획은 수포가 됐다. 법사위에서 벌어진 이른바 ‘추·나 대결’이 국회 운영질서까지 흐트러뜨린 선 넘는 정치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추 위원장은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법사위원 요청에 따라 나 의원에 대한 간사 선임의 건을 상정해 무기명 투표에 부쳤다. 국민의힘은 추 위원장 결정에 반발해 회의장을 빠져나가 투표에 불참했다. 범여권 법사위원만 남아 표결한 결과 총투표수 10표 중 반대 10표로 나 의원 간사 선임의 건은 부결됐다.
여야는 표결 전 의사진행 발언에서도 격돌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남편이 법원장인데 아내가 법사위 간사를 한다고 해서 남편이 욕먹는다”고 지적했다. 이해충돌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2018년 부인과 사별한 박 의원에게 “사모님 뭐 하세요”라고 물었다가 비난을 받았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나 의원 간사 선임을 반대하며 “이런 인간”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민주당은 전날 검찰이 2019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과 관련해 나 의원에게 징역 2년을 구형한 상황에서 법사위 간사를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또 12·3 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면회한 나 의원을 내란 옹호 세력으로 규정하며 문제 삼기도 했다.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간사 선임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리했더니 10가지가 넘는다”며 패스트트랙 사건과 초선 발언 등을 거론했다. 박 의원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때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용산 관저를 드나들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의회 독재의 또 다른 역사를 썼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회법상 상임위 간사 선임의 경우 각 교섭단체 추천을 존중해 별다른 절차 없이 호선으로 처리한 오랜 국회 운영 관례를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나 의원은 표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간사 선임은 (각 당이) 추천하면 동의하는 요식행위로 끝나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독재 끝판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가더니 추 위원장이 한술 더 뜬다는 말도 있다”며 “정말 자괴감이 드는 하루”라고 말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도 “상임위장에서 간사 문제를 두고 기표소를 세우고 여당 의원끼리 투표해 야당 간사를 본인들 마음대로 부결시키는 장면이 과연 대한민국 헌정사에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며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혜원 정우진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