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3500억 달러(483조원) 대미 투자의 세부 내용을 협의 중인 가운데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759조원) 대미 투자를 놓고 사실상의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한 투자처를 뒤집기 어렵고 이익 배분 방식도 미국에 유리하다는 비판이 핵심 내용이다.
미국과 일본이 지난 4일 타결한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자처를 추천하는 투자위원회 위원장은 미국 상무장관이 맡는다. 투자위원회는 투자처 추천 전 미·일 대표로 구성된 협의위원회와 논의해야 하고 협의위원회는 전략적·법적 사항에 대해 의견을 낸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처를 선정해 통보하면 45영업일 안에 미국이 지정하는 계좌에 즉시 사용 가능한 달러화를 납입해야 한다.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 19일까지 이뤄져야 한다. 사실상 ‘백지수표 투자’를 요구한 것이다.
일본에선 일본 대표가 협의위원회에 참여하지만 별다른 개입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협의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이 정한 투자처를 뒤집기 어렵고 미국 주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재팬타임스는 “협의 결과를 투자위원회가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어 일본 측 의견이 무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MOU에는 일본이 자금을 대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정한 세율로 일본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익 배분 방식도 문제다. 투자 원리금 변제 전 미국과 일본이 이익을 절반씩 나눠 갖고 변제 후엔 미국이 이익의 90%를, 일본은 10%만 가져간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기우치 다카히데는 “일본이 미국 산업에 일방적으로 기여하는 불평등한 구조로 보인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에서 “일본 정부가 다시 정밀 검토해 필요 시 미국에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한국에도 이 같은 투자 절차를 요구하면서 협상은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현지시간)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최대한의 국익 반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자동차 관세율은 15%로 인하되고 한국은 25%를 적용받는 상황과 관련해 “우리도 최대한 빨리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