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에 의료와 돌봄 등 역할이 커진 건강보험 재정의 정부 지원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법정 상한 20%에 미치지 못하는 정부 지원율(14%)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올해 국정감사에서 건보 재정과 정부 지원율이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현행 건보의 정부 지원율은 14%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일반회계·기금 지원 현황’를 보면 지난해 건보 재정의 정부 지원율은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14.3%에 그쳤다. 현행법상 국고지원(14%)과 국민건강증진기금(6%)을 합친 법정 상한(20%)에서 5.7% 포인트 부족한 규모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지원율이 14.4%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비중이 감소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과 무상의료운동본부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정부가 2026년도 건보 국고 지원 비율을 올해(14.4%)보다 0.2% 포인트 낮은 14.2%로 결정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건보 국고 지원을 항구적으로 법제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을 올해 국정감사의 주요 의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동안 건보 정부 지원율은 국회와 시민사회, 의료계 등으로부터 전방위적 십자포화를 받았다. 법정 상한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인접한 일본(27.4%), 대만(23.1%)과 비교해 크게 낮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의료계는 낮은 의료 수가를 인상하려면 정부 지원율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도 조세 저항을 불러오는 건강보험료율 인상보다는 정부 지원율 확대가 수월한 방법이라고 본다.
지원율 확대 논리에는 초고령사회에서 건보 재정이 예상치 못한 적자 전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의료비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과 예방 의료, 돌봄 등에서 건강보험 역할이 커지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정부 지원율 확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또 이재명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은 간병비 급여화와 상병수당 도입 등을 추진하려면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지원율 확대가 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반박도 나온다. 일반세(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와 담뱃세 등이 재원인 국고와 국민건강증진기금도 국민 부담인 만큼 결국 국민의 왼쪽 주머니에서 뺀 돈을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보다는 건보 재정 균형 달성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건강보험은 지난해 누적 적립금이 29조7221억원에 달하는 등 매해 쓰는 돈보다 벌어들이는 돈이 많은 만성 흑자 상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단기로는 적자가 나고 장기로는 흑자가 이어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정부가 단기 적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매해 흑자를 내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