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슬기롭게 인터넷 읽는 법

입력 2025-09-17 00:36

소금빵 990원과 식빵 1990원. 구독자 362만명을 거느린 유튜버 ‘슈카’(본명 진석재)가 지난달 말 서울 성수동에 ‘ETF베이커리’를 차리고 선보인 빵의 가격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박리다매 전략으로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을 잡아보겠다는 그의 도전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가게에는 구름 인파가 몰렸다. 나도 ‘990원 소금빵’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갔으나 금요일 오후 3시엔 이미 모든 빵이 동난 뒤였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빵 사업’을 접었다.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 등을 통해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찾아뵙겠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슈카의 도전이 열흘을 채우지 못하고 멈춰선 데에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한 비난 여론 탓이 컸다. 빵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에서 “덤핑으로 소상공인들을 죽이는 행위”라는 날 선 반응이 쏟아졌다. 길게 줄이 설 정도로 인기가 많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 셈이다. 슈카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론에 맞서면서까지 사업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터넷 여론을 과연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한 화두를 제시했다.

실제로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슈카를 비판하는 여러 개의 글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커뮤니티 운영진이 동일 IP에서 반복되는 행동이 있었다며 해당 IP를 차단하자 벌어진 일이었다. 랜선 뒤에 숨은 누군가가 여러 개의 다른 아이디로 접속하며 남긴 글이 비난 여론을 조성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포털 뉴스의 댓글 작성 수 기준 상위 10%에 오른 네티즌이 전체 댓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네이버 73%, 다음 75%에 달한다는 뉴스가 소개됐다. 10대 이상 인구의 0.3%도 안 되는 헤비 댓글러들이 포털사이트의 댓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컴퓨터 화면을 뒤덮은 과격한 의견이 과연 다수의 생각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우리가 접하는 반응을 온전한 여론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분석가인 야콥 니엘센의 ‘90 9 1 법칙’이 이를 잘 설명한다. 100명 중 90명은 ‘눈팅’만 하고 9명만 간헐적으로 글을 쓰며 오직 1명만 압도적인 비중으로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얘기다. 플랫폼마다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소수가 다수의 의견을 호도하는 왜곡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퓨리서치센터 또한 트위터(현 엑스·X) 상위 10% 이용자가 전체 트윗의 80%를 쏟아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으니 우리가 시시각각 마주하는 인터넷 여론은 극소수의 손끝에서 과장되거나 조작된 허상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사람들이 새롭거나 놀라운 것에 더 크게 반응하는 점도 혐오와 증오를 증폭시킨다. 이런 온라인 특성 탓에 소수의 큰 목소리는 손쉽게 여론이라는 가면을 쓰게 된다. 슈카빵 사태를 겪으면서 또다시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된 셈이다. 우리가 본 것은 정말 여론이었을까.

슬기로운 네티즌이라면 인터넷 화면 속 소수의 손끝이 만든 반응을 민심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물론 인터넷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신호가 소수에 의해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았는지 가려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댓글 수나 좋아요 숫자에 휘둘리는 대신 그 속내를 살펴보는 성숙함도 절실하다. 여론이라는 이름의 허상에 속지 않는 것, 그게 혐오와 선동의 알고리즘을 무력화하고 건강한 공론장을 지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김상기 콘텐츠랩 플랫폼 전략팀 선임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