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제거는 서가를 정치화
하는 것… 독자가 직접 판단
하도록 질문하고 토론해야
하는 것… 독자가 직접 판단
하도록 질문하고 토론해야
책이 누군가의 인생에 그리 대단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출판으로 밥벌이를 하는 입장이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다. 물론 어렸을 때 읽었던 책 한 권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어느 명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뿌듯하지만, 잠시 후에는 책이 그렇게 힘센 매체라면 훨씬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더 맹렬하게 읽혀야 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AI와 알고리즘이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을 토해내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책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은 주로 도서관 주변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도서관의 서가를 감시하면서 혹시라도 ‘나쁜 책들’이 들어와 독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특정한 책들을 서가에서 제거하기 위해 갖은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충남 소재 공공도서관들에는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폐기·회수하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조기 성애화’와 ‘동성애 조장’ 등을 이유로 특정한 책들을 폐기하거나 서가에서 분리해 별도 공간에 비치하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해당 도서를 서가에서 제거하고 열람과 대출을 제한하도록 도서관에 명령했던 도지사와 교육감 등에게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률로 정하지 않은 사유로 특정 도서의 이용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해당 도서 대부분은 서가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책이 그렇게 위력적이라면 정말로 좋을 것이다. 책을 만드는 나와 동료들의 삶도 더 윤택하거나, 최소한 훨씬 보람찰 것도 같다. 하지만 독자를 단박에 ‘조기 성애화’하거나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바꾸어 놓을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드래곤볼’을 읽고 산에 들어가서 수련하거나, ‘모비 딕’을 읽고 흰고래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는 이는 없다.
독일 문예이론가 볼프강 이저는 텍스트가 틈으로 가득 찬 불완전한 구조물이라고 말했다. 독자는 ‘드래곤볼’의 손오공의 서사를 그대로 복제해서 산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의 ‘틈’을 우정과 노력, 성장과 같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채우며 책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성정체성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청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책의 ‘틈’을 채워나간다.
특정한 책을 금지하려는 이들은 독자를 스스로 의미를 창조할 줄 모르는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책을 읽으면 그 사상에 그대로 물드는, 텅 빈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가 마치 피하주사처럼 대중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입한다는, 20세기 초반의 낡고 폐기된 모델에 가깝다.
도서관의 서가에 비치된 책에 함부로 손을 뻗는 이들은 특정한 정치 진영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여러 시의회와 교육청 등에서 도서관의 ‘리박스쿨’ 추천 도서를 제한하거나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 여수·순천 사건 당시의 학살을 ‘암 환자의 방사선 치료’로 묘사했다는 이 책들이 공공도서관 서가에 놓인다는 것은 솔직히 편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들을 억지로 제거하는 것은 도서관의 서가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나쁜 책을 상대하는 좋은 방법은, 그것을 치우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은 해당 책 옆에 논란의 역사적 맥락이나 다른 시각을 담은 다양한 책을 함께 비치하고, 독서 모임이나 토론회를 통해 독자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전문가의 이름으로 시민과 청소년의 판단력을 미리 재단하고 그들이 지닌 사유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인내심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지적 면역체계를 단단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책이 지닌 어떤 힘일지도 모른다.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