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분노하는 젠지

입력 2025-09-17 00:40

댄서 가비가 최근 유튜브에서 묘사한 ‘젠지 스테어(stare)’가 화제다. 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젠지)가 누가 물어보면 ‘멍만 때린다(스테어)’는 걸 풍자했다. 기업에선 젊은 사원들의 ‘3요’ 주의보가 돌기도 한다. 업무를 시키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만 대답하는 걸 꼬집었다. Z세대의 개인주의, 주변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담론이다.

이런 20대가 어느 순간 각성하면 무서운 깨시민이 될 수 있음이 네팔 젠지혁명에서 드러났다. 정치인들의 부패, 경제적 불평등에 억눌리던 중 실생활 수단인 SNS가 정부에 의해 차단되자 네팔 Z세대가 마침내 폭발했다. 시위 발생 일주일 만에 정권이 붕괴됐다. 속옷 차림의 장관이 청년들에게 구타당하는 동영상이 나돈다. 2022년 스리랑카, 지난해 방글라데시, 올해 인도네시아를 거쳐 네팔까지 번진 남아시아 반정부 시위의 특징 한가운데 젠지가 있다.

20대가 SNS로 뭉쳐 정권 교체의 회오리를 불러일으킨 첫 사례는 2011년 아랍의 봄이다. 튀니지의 노점상 청년 분신 자살이 계기가 돼 실업과 독재에 허덕이던 젊은층이 일어났다. 장기 집권하던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예멘 지도자가 사살되거나 쫓겨났다. 얌전하고 소극적이던 20대 청년들이 투쟁에 나선 첫째 이유가 경제 문제다. 시위가 휩쓴 남아시아 국가들의 청년 실업률은 20~40% 수준이다. 분노의 심지가 차곡차곡 쌓였었다.

빈국의 일로만 볼 게 아니다.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는 우리에게도 뇌관이 되고 있다. 지난달 15~29세 취업자는 22만명가량 줄어 하락폭이 8월 기준으로 27년 만에 가장 컸다. 그냥 쉬는 청년이 40만명이다. 20대 때 민주화운동으로 시민 혁명의 효능감을 맛본 현 집권세력이 정작 자식 뻘인 20대의 분노와 불안에 귀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청년 일자리보다 자신들 이해가 걸린 ‘정년 연장’에 더 골몰하는 모습도 보인다. 멍만 때린다고, 문해력 떨어진다고 젠지에 손가락질만 하다간 나중에 큰코 다칠 수도 있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