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기업은 경영의 불확실성을 걱정하고, 노동자는 권리 보장을 요구한다. 곳곳에서 기업이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번 개정은 단순한 법률 조정이 아니다. 기업과 노동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다. 기업에는 “당신은 구성원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노동자에게는 “당신은 기업의 존재 가치를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기업은 효율과 생존을 고민한다. 노동자는 존엄과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구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공존은 표면적인 화해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장기적 신뢰 위에서 자라난다. 기업은 단기적 이익 계산을 넘어 근로자의 삶의 주기를 고려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는 변화와 도전에 협력하며, 기업이 사회 속에서 맡는 역할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공감 혹은 표면적 통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적으로 사람 중심의 기업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경영자와 노동자는 서로 다른 존재 같지만 경영과 노동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자(者)’, 사람이다. 사람이 중심이 될 때 노사는 양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엄청난 신비로운 공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조직 문화에서는 문제, 갈등, 효과적 경영, 이익의 최대화, 쟁의, 파업, 임금 등은 모두 후순위로 다뤄지는 주제가 될 뿐이다. 서로 대립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와 발전을 먼저 묻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둘째, 지속적 대화 구조를 만들고 노사가 공동의 가치 구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일이다. 갈등이 드러나고서야 이뤄지는 대화는 한계가 있다. 지속적인 대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공존은 자신의 이익을 높이거나 좋은 조건으로 상대편을 설득하려는 표면적 우호관계로는 달성할 수 없다. 진정한 공존은 함께 미래와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는 장기적 신뢰 관계에서 태동한다.
셋째, 상호 성장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임금만이 아니라 학습, 전문성, 삶의 질을 성과 지표에 반영해 노동자의 자기실현을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 활동과 관련된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노사가 함께 만든 합의를 지역사회와 공유함으로써 기업은 단순한 이윤 창출의 공간이 아니라 공공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없는 기업과 노동은 공허하다. 이렇게 바라보면 원청과 하청, 끝없는 투쟁과 단절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경영과 노동은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라는 뿌리에서 만나고 있다. 오늘날 기업은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노사 관계 역시 ‘대립’이 아니라 ‘경계 속의 연결’로 재정의돼야 한다. 임금이 아닌 가치 실현을 고민하고 공동의 비전을 세울 때 기업과 노동자는 비로소 함께 걷는 길을 열 수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변화의 본질이자 우리 모두 모색해야 할 새로운 길이다. 기업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함께 고민하고,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을 탐색하며, 상호 성장을 위해 모두가 함께 힘써야 한다. 임금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상호 성장을 위한 공동의 비전을 세울 때 기업과 노동자는 진정한 공존의 길을 걷게 된다.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