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다 그렇지.” 세상 이치를 다 꿰뚫은 듯 심드렁하게 말을 뱉다가도, 삶이 망망대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부지런히 노를 저어 왔건만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물살이 맞는 방향인지 알 수 없어 덜컥 겁이 난다. 나침반이 되어주던 신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등대의 불빛처럼 좇던 희망마저 안개에 갇혀 희끄무레해진다. 힘껏 뱃머리를 돌려도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고, 옅은 바람조차 불어주지 않는 적막 속에서 나 홀로 부유하는 것 같은 기분. 막막함을 넘어 섬찟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면 야심 차게 세웠던 계획을 유보하고, 성실과 노력의 몸짓도 멈춘다. 심해로 깊이 잠수하듯 내면 속으로 가라앉아 뒤늦게나마 돌보지 못한 자신을 살핀다. 일단 제멋대로인 파도에 휘청거리면서도 노를 꽉 쥐고 있는 양손을 보며 안도한다. 그건 내가 살아있음을, 삶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니까. 그러고는 되뇐다. 인생은 과락이 있는 시험도, 목표에 먼저 도달해야 하는 경주도 아니라고. 그때그때 다가오는 물결을 받아내는 항해일 뿐이라고. 방향을 몰라 헤매는 것도 항해의 과정이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지쳐 눕는 순간도 마음먹기에 따라 숨 고르는 휴식이 될 수 있다고.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되뇐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잘 살아가는 지혜는 유연함에 있는 것 같다. 거친 파도를 타고 넘으며 온몸이 흠뻑 젖었다가, 순풍에 콧노래를 부르며 쉽게 나아가기도 하는 항해사의 요령처럼. 삶은 내 의지로 노를 놓게 되는 날까지 넓고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것. 그렇구나, 장자가 말한 소요유 뜻 그대로 인생은 멀리 소풍을 나온 게 맞는다.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말 그릇에 더는 단념을 담지 않으리. 순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유연함에서 용기가 생겨나는 것 같다. 목적지 없는 항해를 즐길 수 있는 용기. 인생을 소풍처럼 살아갈 용기.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