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명품 카펫에 묻혀버린 영적 목소리

입력 2025-09-17 00:12
관람객이 14일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소문 본관을 찾아 19세기 영성 화가 조지아나 하우튼의 추상화를 감상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색이 주제를 드러내는 공간”이라는 기획 의도에 따라 이례적으로 전시장 전체 바닥에 색색의 고급 카펫이 깔렸다.

왜 이 시대에 ‘영성’을 들고 나왔을까.

지난달 말 시작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14일 다시 찾았다.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낙원상가, 청년예술청 등지에서 열린다. 전시장을 돌며 이런 질문을 던졌지만 끝내 답은 들리지 않았다.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 등 공동 감독 3명이 내세운 주제는 ‘강령: 영혼의 기술’이다. 역대 두 번째 공모를 통해 초대된 감독이라서 그런지 역시 힘이 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들이 대개 ‘경계를 넘어서’ 식으로 이것저것 아우를 수 있는 ‘비빔밥’ 주제를 내세워 산만하지만, 이 감독들은 비엔날레에서 다뤄지던 소주제인 ‘영성’ 하나만을 과감하게 끌고 나왔다. 그 자신감과 선명성에 점수를 주고 싶다.

주 전시장인 서소문본관은 인지학을 창시한 19세기 오스트리아 영적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칠판 드로잉’으로 전시를 연다. 이어 3개 층에 걸쳐 8개 소주제별로 공간의 색상이 분홍, 주황, 보라, 연두, 파랑 등으로 바뀐다. 슈타이너가 쓴 ‘색채의 본질’에서 말한 바대로 실증적인 시각이 아닌 영적 느낌으로 바라보는 색채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슈타이너의 작품이 놓인 검은 방을 지나면 하늘이 열리듯 쨍한 분홍 방이 나온다. 1부 ‘어제 온다면 내일은 최초가 되리라’ 섹션인데, 조지아나 하우튼(1814∼1884)이 그린 추상화를 만날 수 있다. 영적 교신을 통해 완성됐다는 ‘하나님의 눈’ ‘주님의 힘’ ‘주님의 손’ ‘주님의 자비’ 등은 추상화의 탄생에 감정도 이성도 아닌 영성이라는 새로운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감정의 칸딘스키, 이성의 몬드리안에 이어 영성의 추상화 세계를 연 여성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회화도 이 방에 있다. 일본의 종교 지도자 데구치 오니사부로(1871∼1948)가 만든 찻잔은 무심의 경지가 아니라 영적 실천의 맥락에서 이 공간에 불려 나왔다.

백남준의 ‘TV부처’(1989).

분홍과 주황이 겹쳐지는 경계 지대에는 요셉 보이스(1991∼1986)의 1974년 상징적인 퍼포먼스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은 나를 좋아한다’를 볼 수 있다. 보이스가 식민지 시대 이전의 영적 존재를 상징하는 동물 코요테와 3일간 한 공간에서 지내는 퍼포먼스를 찍은 것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다른 종과 연결됐음을 보여주는 제의다. 또 카메라에 비친 TV 속 자신을 바라보는 부처를 담은 백남준(1932∼2006)의 ‘TV부처’는 자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타로 형상으로 그린 수채화 78점으로 지구의 위기를 경고하는 수잔 트라이스터의 ‘헥센 5.0’.

주황 방에서는 마녀, 열녀 등을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한다. 한국 작가 윤형민(47)의 ‘블랙 북’은 조선시대 ‘삼강행실도’ 목판을 슬라이드처럼 보여주며 유교사회가 강요하던 효와 정절을 블랙유머 식으로 풍자한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수잔 트라이스터(67)의 ‘헥센 5.0’은 타로 형상으로 그린 수채화 78점으로 지구의 위기에 대해 발언한다.

원로 작가 이승택의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 퍼포먼스 사진(1988).

우주적 실천을 의미하는 연두색 방에서 태국 출신 인주 첸(48)은 외계 지성의 시선을 빌려 인간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한국의 원로 이승택(93)이 1980년대 자신의 그림이 담긴 캔버스를 불태워 강물에 띄워 보내던 퍼포먼스 사진도 전시됐다. 그는 물, 불, 바람 등 자연 요소를 작업 속에 도입했던 대지 미술가다.

동선은 1층에서 2층, 3층으로 올라갈 때 마치 동굴 속을 탐험하듯 갇힌 공간에서 위로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2층에서는 치유로서의 예술을, 3층에서는 다른 행성과 달리 물로 이루어진 지구의 유동성 등을 다룬다. 특히 마지막 섹션인 ‘적들이 승리한 세상에서 망자의 안식은 없다’는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파괴된 원주민의 전통문화를 고발함으로써 주제를 탈식민주의로까지 확장한다.

이처럼 영성의 미술사를 탐험하는 이번 주제는 시기적으로 19세기부터 200년에 걸쳐 있다. 정작 동시대에 대한 질문은 빈약하다. 지금 왜 한국에서 하는 비엔날레에서 영성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왔는지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소유와 소비가 최상의 가치인 물질주의와 배금주의, 이것이 플랫폼 경제에 의해 강화되며 영혼이 점점 찌들어가는 당대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닐까. 이번 전시에 초대된 50여명(팀) 작가 중 3분의 1을 작고 작가로 채운 점도 당대성을 취약하게 만든 요소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색이다. 공동감독들은 ‘색채 선언’까지 하며 색이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주제를 드러내는 공간이자 큐레토리얼의 핵심 도구임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메인 전시장은 물론 남루한 근대 빌딩인 낙원상가에도 고급 카펫을 깔았다. 명품 불가리의 협찬을 받은 것이다. 카펫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상업성의 대명사인 명품업체의 협찬 때문에 반상업주의, 반자본주의의 날 선 목소리가 근본적으로 걸러진 건 아닐까. 동시대의 영성이 고급 카펫에 묻혀버린 비엔날레 같아 아쉬웠다.

글·사진=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