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범여권에서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거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뿐 아니라 근로자까지 확대하는 등의 ‘친노동’ 법안이 잇달아 발의되고 있다. 이미 국회 문턱을 넘어 내년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등에 대한 대비에도 여념이 없는 기업들로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국 기업을 향한 미국 정부의 관세 등 대외적 압박이 거세진 상황에서 입법이 현실화될 경우 기업 경영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하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확대하도록 개정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지난달 26일 대표발의했다. 4인 이하 영세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원천 배제하고 시행령으로 일부만 적용하는 현행법 구조를 거꾸로 뒤집어 모든 근로자가 법 적용을 받고 영세사업장에 대해 시행령으로 근로시간, 휴가, 취업규칙 등의 일부 조항 적용을 배제하도록 바꾼다는 내용이다. 윤 의원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취지에 부합하도록 하면서 법체계의 정합성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시행령으로 적용 예외를 규정한다 해도 법과 시행령은 무게가 천지 차이”라며 “영세사업체들의 경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안이나 시행령 제·개정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7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 전체로 확대된 상법 개정안이 처리된 상황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근로자까지 추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지난달 중순 발의됐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에는 이용우·박해철 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재계에서는 노동계를 의식한 ‘보여주기식 입법’이란 해석이 나오지만 긴장을 늦추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한 개정 상법 시행 대비에도 분주한데 여기서 더 확대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고 토로했다. 민주당은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도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장의 안전보건 책임자에게 형사처벌에 더해 매출의 최대 2%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근로자·사업주뿐 아니라 근로자 대표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도 산업재해 예상 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최근 여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우후죽순 같은 친노동 법안과 달리 기업 지원 입법들은 발의 이후에도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많다. 지난 6월 주철현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을 담았지만 최근에야 해당 상임위에 상정되는 등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