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이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선출 권력의 위계를 강조하며 사법부와 검찰을 압박하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민주주의 담론 차원으로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집요하고, 요구사항도 구체적이다. 선거에서 이미 승리한 집권여당이 권력 정당성을 지속해서 확인하려 하는 것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무엇보다 지난해 5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의 ‘9일 만의 파기환송’이 트리거가 됐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모두 비주류에서 출발해 국민 선택을 받았음에도 사회 기득권의 부정과 무시가 지속됐다는 피해의식이 뒤따라 발현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율사 출신 여권 관계자는 15일 국민일보에 “지난해 5월 대법원 전합이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전합 회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 1차 트리거였고 두 번째는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한 미조치가 여권 내 사법부 불신을 키웠다”며 “밖에서는 ‘왜 저렇게 오버하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의원들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감정과 민감도가 확실히 다르다”고 밝혔다.
지난 6·3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대법원 전합 파기환송은 “국민 손으로 뽑은 대선 후보마저 법원이 뒤바꾸려 한다”는 위기감을 여당 내 확산시켰다. 전합 회부 결정부터 심리와 선고에 걸린 속도 등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속전속결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비선출 권력이 선거판을 좌지우지한다고 본 여권 내에서 문제의식이 분출했고, 선출 권력이 권력 서열 정점에 있다는 정당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토대가 됐다는 분석이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 당선이 유력한 특정 당의 후보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은 명백한 대선 개입”이라며 “입법부와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받고 심판도 받는다. 사법부도 잘못한 것은 심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최근 전국법원장회의는 또 다른 도화선”이라며 “결국 그들도 ‘민주주의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 선택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기득권 주류 세력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범여권 내 깊숙이 뿌리내린 피해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대통령은 당내 비주류에서 출발해 권력의 핵심을 꿰차기까지 검찰 수사 등 사법 리스크와 당 안팎의 견제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다. 민주당 원외 인사는 “비선출 권력이 선출 권력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통성의 우위를 내세워 방어막을 치려는 심리가 깔린 것 같다”며 “비상계엄과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엄청난 견제심리가 발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의 ‘선출 권력 존중’ 발언은 오랜 신념이자 소신이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의 목소리를 사법부가 경청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사법부가 성역이 아님에도 국민이 질타하는 문제를 피해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부 재판부가 마치 천부적 권한을 위임받은 것처럼 행세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여당이 선출 권력의 위계 우위론을 무기로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기반해 유지됐던 사회 질서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압도적 의석의 여당도 마찬가지”라며 “위계를 앞세워 사법부 수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대통령과 여당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삼권분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원 송경모 윤예솔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