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한도 대출)은 은행이 개인에게 일정 한도의 신용을 부여해 필요한 만큼 빌려 쓰게 하는 제도다. 당장 쓰지 않더라도 비상시 기댈 곳이 있다는 든든함을 준다. 국가에도 비슷한 장치가 있다. 바로 통화 스와프다. 두 나라 중앙은행이 서로의 통화를 빌려주고 정해진 기간 뒤 되갚는 계약이다.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스와프를 맺으면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확보할 수 있고, 위기 때 외환시장 안정에 활용할 수 있다. 한 나라가 외환 유동성이 부족할 때 마치 신용 한도처럼 ‘외화 조달 창구’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한·미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금융위기 당시 3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은 실제로 다 쓰이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면 달러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신호만으로도 원·달러 환율 급등을 진정시켰다. 팬데믹 때는 600억 달러 중 일부를 시장에 풀었고 달러 가뭄을 해소하며 외환시장을 안정시켰다.
최근 정부가 미국에 ‘무제한 통화 스와프’ 체결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지난 7월 미국이 한국에 부과키로 한 25%의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약 48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3억 달러 수준이다. 미국은 현금 직접 투자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대규모 달러가 빠져나가면 환율 불안을 키울 수 있다. 통화 스와프가 체결되면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이 신용이 있어야 만들 수 있듯 통화 스와프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유럽 일본 등 기축통화국과만 상설 계약을 맺고, 한국과는 위기 때 한시적 계약에 그친다. 결국 중요한 건 경제의 기초체력이다. 외환보유액, 환율 안정, 재정 건전성 등이 뒷받침돼야 협상력이 생긴다. 개인이든 국가든 신뢰가 있어야 위기의 순간 우산을 빌릴 수 있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