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해 근로자들을 체포·구금한 사태에 대해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미국은 배터리를 만드는 데 아시아의 전문 기술력에 여전히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자책골을 넣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미 현지 직접 투자는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워싱턴에 경고한 것(warned)”이라고 표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이 해외 투자 유치 정책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현지 언론에서도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포린폴리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트럼프의 현대차 단속, 미국에서 배터리 브레인을 유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이민 규정과 현대차 급습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들이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대규모 투자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린폴리시는 “이번 단속은 오랜 동맹국인 한국과의 외교적 불씨를 지폈으며 미국 배터리 산업 현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미국 산업은 자체 성장을 위해 여전히 외국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전문가들을 인용해 “외국 기업들이 해외 진출 초기에 자국 인력을 우선 투입하고 이후에 현지 인력을 훈련하는 방식은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세계 배터리 산업의 절대 강자인 중국에 이어 일본·한국이 글로벌 배터리 강국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 기업들은 해외 배터리 생산 능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수요의 20% 이상을 공급했다”고 전했다.
컨설팅업체 하우스 마운틴 파트너스의 크리스 베리 대표는 “기술의 구축과 확장에 우리는 외국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며 “미국 노동력만으로는 외국 도움 없이 이처럼 극도로 기술적으로 정교한 공장들을 건설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민 단속 이후 현대차 배터리 공장 건설이 지연된 것에 대해 “자책골과 다름없다”며 “우리는 지금 얼굴이 밉다고 코를 자르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이 외국 인재를 배제하면서 자국 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선 공장 설립에 필요한 자국 전문 인력이 부족하며 비자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언론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일 사설에서 “미국이 더 많은 해외 투자를 받으려면 더 많은 임시 비자가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발언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회견에서 “기술자가 있어야 장비 설치를 할 텐데 미국에는 인력이 없고, 일할 사람들을 체류하게 해 달라는 비자는 안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WSJ는 “미국인들이 듣기 거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라며 “조지아에서와 같은 급습은 트럼프가 원하는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