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에 대한 개정안)이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된 법안의 시행은 내년 3월임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 곳곳에서는 이미 노사 간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노조의 요구 수위와 내용부터 부쩍 달라졌다. IT 업계에서는 임단협 결렬을 이유로 모기업에 책임을 묻는 집회가 열리고, 자동차 업계의 한 노조는 회사의 신사업 진출 시 사전 통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기업의 고유한 경영권인 합병까지 문제 삼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개정된 노조법이 내년에 시행될 경우 노조에 의한 기업의 경영 자율성이 상당히 제약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본시장의 반응은 더욱 직설적이다. 노조법 통과 직후 증권시장에서는 로봇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등했다. 노조법 개정이 노사 갈등을 심화시키고 인건비 상승을 불러와 기업들이 자동화와 로봇 기술을 미래 대안으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시장의 냉정한 판단이 다가올 현실을 예고하는 셈이다.
노조법 2조는 사용자 개념을 대폭 확장해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없는 원청까지 교섭 의무를 부과했다. 이로 인해 책임과 권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누가 누구와 교섭해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법적 분쟁은 증가하고, 경영 리스크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합병, 사업 재편 같은 경영상 고유 결정까지 쟁의행위 대상에 포함된 점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불가피한 사업 구조조정마저 원활히 추진되지 못하면 기업 경쟁력 약화는 필연적 결과가 될 것이다.
노조법 3조는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제한했다. 그동안 손해배상 청구권은 기업이 무분별한 파업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최소한의 견제 장치였다. 이마저 무력화되면서 파업 진입 장벽은 현저히 낮아졌다. 기업의 재산권 보호 장치가 허술해진 상황에서 경영진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됐다.
내년 3월 개정된 노조법이 전면 시행될 경우 우리 경제는 곳곳에서 막힌 혈관으로 인한 순환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의 취지와 긍정적 측면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예측 불가능한 교섭 의무와 파업 리스크로 인해 신규 투자를 주저할 수 있다. 현실화될 경우 기술개발 지연과 생산시설 확충 차질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합리성과 현실성에서 찾아야 한다. 사용자 범위를 보다 명확히 재정의하고, 쟁의 대상을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맞게 합리화해야 한다. 특히 투자 결정이나 구조조정과 같은 핵심 경영권은 교섭 대상에서 제외하는 명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법적 강제만으로는 근본적 갈등 해결이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노사정의 건설적 대화 채널을 복원해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중재 기구의 역할을 강화해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 기업과 노동조합 모두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함께 성장하는 플러스섬 게임으로 전환하려는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상호 존중과 양보를 바탕으로 한 성숙한 노사 관계 구축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개정된 노조법 2·3조가 불러올 부작용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투자와 일자리라는 경제의 핵심 동력이 멈춰 선다. 노조법 개정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대안과 세밀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