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선거운동 잘못이지만 도주 우려로 구속은 지나쳐
목회자는 하나님 나라 위해 사역하고 정치 관여 말아야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는 취임사가 빈말 되지 않기를
목회자는 하나님 나라 위해 사역하고 정치 관여 말아야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는 취임사가 빈말 되지 않기를
1년 전 이맘때 보수 개신교계가 10월 27일을 D데이로 잡고 서울 광화문에서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여는 것을 추진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이 동성 커플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교계는 동성애, 동성결혼 합법화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위기감이 컸다. 그 집회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이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다. 손 목사는 서울의 대형교회 목사들을 찾아다니며 10·27 동성애 반대 집회에 모이도록 했다. 극동방송에 실무 창구를 차리고 비협조적인 교회들에는 ‘바알신에 무릎 꿇지 말라’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매주 광화문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정치 집회를 하면서 국민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주일에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여는 데 대해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10·27 집회 이후 12월 초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고 손 목사가 급조된 조직인 세이브코리아 대표를 맡아 전국을 돌며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끌었다. 일각에선 일련의 움직임들이 지난 정권과 모종의 교감하에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명태균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윤 전 대통령이 기독교계를 방패막이로 활용하려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손 목사는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 정부의 방역 방침을 어기고 대면 예배를 강행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거의 모든 교회들이 정부의 방역 지침에 협조한 것과 정반대 결정이었다. 그는 가장 보수적인 교단인 고신 측 목회자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거침이 없다.
상당수 목회자들은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성경에 반하는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기독교의 쇠락을 가속화할 것이란 위기감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이 이러한 절박함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윤석열정부는 이를 이용했다.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기독교인의 표를 얻기 위해 교회를 찾아다닌다. 무속 이미지가 강했던 윤 전 대통령 부부는 통일교와 신천지 등 이단과 손잡고 무속인들을 곁에 두면서 겉으로는 기독교에 더 구애했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이나 국가조찬기도회 일부 임원들이 이들 부부의 비위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 목사는 공직선거법과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지난 8일 구속됐다. 대통령 선거와 부산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반대 후보의 낙선을 주창하는 등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다. 목회자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목회자가 설교 강단에서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고 선거운동에 개입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정치 집회를 이끌며 사회 분열을 조장한 것도 대단히 잘못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주 주일 예배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한 것은 지나쳤다. 그는 이단성 논란이 있는 또다른 극우 목사와는 결이 다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한 발언에 대해 구속까지 가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이렇게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손현보 목사나 세이브코리아가 너무 독선적으로 흐른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독선적 형태는 또다른 증오와 독선을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상식과 지켜야 할 선을 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국민일보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의 말이다.
특검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집과 집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망신 주는 것도 불편하다. 목회자들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역할 뿐 어느 특정 정당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윤 전 대통령과 기독교계의 유착은 교계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목회자들이 나서서 설교 강단을 정치색으로 물들이고 증오와 분노를 부채질한 1차적 잘못이 있다. 어느 후보는 장로다, 교회를 잘 다닌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나타나면 몰표를 주고 비합리적 판단을 하지 않았는지 자성해야 한다. 수년째 광화문의 정치 목사를 결연히 끊어내지 못하고 방관한 책임도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