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사청문회가 정쟁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입력 2025-09-16 00:35

지난 1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의 소개를 통해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청원했다. 입법 청원에는 5만명 이상 국민 동의를 받는 ‘국민동의 청원’과 국회의원의 소개를 통한 ‘의원소개 청원’이 있는데, 후자의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행정부 인사권을 견제하고, 공직 적격자를 검증하기 위해 2000년 도입된 제도다. 도입 당시 인사청문회 대상은 국무총리, 대법원장 등 헌법상 국회 동의를 필수로 하는 23개 공직이었다. 그러다가 2003년 4대 권력기구의 장, 2006년 국무위원으로 꾸준히 확대돼 현재 66개 공직에 이른다. 다만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상 국회 임명 동의가 필수인 23개 공직은 국회의 임명 동의가 없을 경우 대통령의 임명이 불가능한 반면 나머지 43개 공직은 국회의 임명 동의가 없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일부 공직에 대해 국회의 임명 동의가 없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제도적 특징은 여당으로 하여금 후보자의 자료 제출 거부, 증인 채택 불발 등을 무조건 감싸고 옹호하게 만든다. ‘어차피 임명될 테니’ 인사청문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 여당엔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야당 역시 아무리 반대해도 어차피 임명될 테니 여론을 자극하는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여야의 이러한 선택이 맞물리고, 최근의 정치 양극화를 배경으로 인사청문회는 지독한 정쟁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최근 허영·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문회를 도덕성 검증과 역량 검증으로 이원화하고,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인사청문회 파행의 원인을 잘못 짚었다는 점에서 엉뚱하고, 공직 희망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에서 해악적이다.

대통령의 고위 공직자 임명은 추천→검증→지명→인사청문회→최종 임명 등 5단계를 거친다. 먼저 대통령실이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고, 검증한 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인사청문회 대상자로 지명한다. 대통령실 내에서 추천과 검증을 분리하는 것은 최대한 인사 실패를 막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러한 추천과 검증 과정에서 생산된 기준과 자료가 인사청문회 의원들에게 전혀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 대상 공직후보자를 누가, 어떤 이유로 추천했는지, 또 해당 인물을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검증했는지 등에 대해 일체의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게다가 공직후보자가 자료를 누락하거나 제출을 거부하면 인사청문회는 ‘깜깜이 청문회’가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무조건 옹호하고, 야당은 사생결단으로 반대하는 정쟁의 장이 된다. 인사청문회 파행의 진짜 원인은 도덕성 검증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실의 부실한 사전 검증과 자료 비공유, 그리고 공직후보자의 자료 제출 거부 때문이다.

따라서 경실련은 대통령실 사전검증 요약 자료 국회 제출 의무화, 후보자 본인의 자료 제출 의무화, 자료 미제출 시 ‘사유서 제출’ 의무화. 거부·허위 제출에 대한 실효적 제재 방안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동시에 경실련은 공직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방안에도 반대한다. 공직자의 역량과 도덕성은 분리되지 않으며, 공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대충 살아도 충분히 감출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제도화 25년째인 인사청문회는 미래의 공직후보자에게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장이기도 하다.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면 우리 사회는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공직자를 키우고 만날 기회를 아예 잃어버리게 된다.

신현기 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