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결박·침대엔 곰팡이… 美, 구금사태에 첫 유감 표명

입력 2025-09-15 00:03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체포된 근로자들이 수갑과 쇠사슬에 묶인 채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하면서 이들이 구금 기간 겪은 부당한 대우와 인권 침해적 상황도 전해지고 있다. 손과 발이 묶인 채 끌려간 근로자들은 72인실 임시 시설에 몰아넣어졌고 늘어선 2층 침대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공용 변기는 가림막이 없어 하체를 겨우 덮는 정도의 천으로 가리고 용변을 봤다고 한다.

지난 12일 귀국한 근로자들과 가족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4일(현지시간) 오전 10시쯤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들이 닥쳤다. ICE 요원들은 외국인 체포 영장 관련 서류를 나눠주며 빈칸을 채우게 했다. 무슨 서류인지도 설명하지 않았고 미란다 원칙 고지도 없었다고 한다.

구금 시설은 상태가 매우 열악했다. 침대 매트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물에서는 악취가 나 마시기 힘들었다. 구금 3~4일이 지나서야 순차적으로 2인 1실 방을 배정 받았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큰 문제였다. 변기가 개방돼 있어 생리 현상을 참고 버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근로자는 ICE 요원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국적을 묻더니 웃으며 “노스 코리아”(북한) “로켓맨”(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 붙인 별명) 등을 언급해 불쾌했다고 전했다.

크리스토퍼 랜도 미 국무부 부장관은 14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박윤주 1차관과의 회담에서 이번 사태가 일어나게 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랜도 부장관은 또 이번 사태를 비자 제도 개선 및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전기로 활용해 나가자고 언급했다. 구금 사태 발생 이후 미 고위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건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우리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미 측에 지속 제기했다”며 “미진했던 부분을 면밀히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