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비자 문제도, 관세 협상도 결론이 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죠.”
지난 12일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환했지만 대미 투자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 투자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이번 근로자 구금 사태를 계기로 비자 문제를 협의하는 워킹그룹을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측 관세 협상 압박이 몰아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다. 관세 협상이 교착되면서 당분간 한국산 제품에 대한 25%(철강·알루미늄 등은 50%) 관세율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투자 기업들 사이에서도 대미 투자에 따른 여러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다시 점검하려는 기류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불확실성”이라며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과거보다 미국이 갖는 장점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를 비롯해 삼성전자 삼성SDI SK하이닉스 SK온 CJ제일제당 LS전선 등이 현재 미국 내에서 생산시설(공장) 신·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HL-GA 공장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현대차가 약 63억 달러(8조8000억원)를 투자했다. 한국 기업들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당시 총 1500억 달러(약 208조원)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미국 측이 공장 건설 단계에서부터 미국인 고용을 주문한 데 대해 반도체나 배터리 등 업계를 중심으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는 단순 조립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이고, 설비 대부분이 한국산이라 공장 건설 과정에서 미국 근로자들을 쓰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우리 기업들이 투자해 공장을 짓는 지역은 대부분 미국에서도 시골”이라며 “현지 인력을 쓰고 싶어도 교육을 해서라도 쓸 수 있는 인력조차 구하기 녹록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도 이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2일 사설에서 “미국인들에게 듣기 거북할 수 있지만 공장 설비를 설치할 인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현지 건설노조 등은 미국인 고용에 소극적일 경우 관계 당국에 한국 기업들을 신고하는 등 일부 지역에서는 현지 노조가 투자에 적잖은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일부 기업은 멕시코, 캐나다 등으로 투자지를 다변화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와의 무관세 협정(USMCA)에 따라 이 지역에서 생산된 가전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 다만 재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장벽이 하나둘씩 올라가는 중이라 아직 뚜렷한 대안은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