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농산물 유통비용률(소비자 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추, 무와 같이 유통기간이 짧은 일부 채소류 품목들은 유통비용이 약 70%에 육박했다. 한국의 불투명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농산물 유통비용률은 2023년 기준 49.2%로 10년 전인 2013년(45.0%)보다 4.2% 포인트 상승했다. 소비자가 농산물을 1만원어치를 구입하면 이 중 4920원이 유통 단계 비용이란 뜻이다.
농산물 유통비용률은 1999년 38.7%에서 2023년 49.2%로 10% 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다만 2023년 유통비용률은 직전 연도보다 0.5% 포인트 낮아졌다. 이상기후로 수확량이 대폭 줄어 농민들이 받는 가격이 소비자가격보다 더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배추·무 같은 채소류의 유통비용률이 두드러졌다. 유통기한이 짧은 탓이다. 2023년 기준 월동 무의 유통비용률이 78.1%로 가장 높았고, 양파(72.4%) 고구마(70.4%)도 70%를 넘었다. 대파 등 조미채소를 비롯해 과일류와 축산물도 50~60% 안팎이었다.
유통업체가 남기는 이윤도 높아졌다. aT에 따르면 유통비용에서 직접비와 간접비를 제외한 이윤은 2023년 14.6%로 10년 전보다 1.2% 포인트 높아졌다. 더욱이 농산물 유통에 세금이 붙지 않아 구체적인 이윤 집계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통업체 이윤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유통비용률의 배경으로 불투명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꼽힌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농가 판매가격의 누적 상승률이 소비자가격 상승률에 미치지 못해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이는 영세한 생산 농가보다 도·소매업체가 더 큰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의 식료품 가격이 해외 주요국보다 비싼 구조적 원인이 된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 가격지수는 2023년 기준 156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100)과 비교해 1.5배 이상 높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온라인 도매시장을 확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을 온라인으로 전환해 도매시장 거래를 늘리고 유통 단계를 줄여 비용을 낮춘다는 방침이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