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주가 미라클 질주… AI 인프라 품고 제2 전성기

입력 2025-09-16 00:07

새로운 인공지능(AI) 아이콘의 등장일까.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Oracle)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온 오라클은 클라우드 전환에서 뒤처지면서 테슬라와 엔비디아 등 ‘매그니피센트(M7)’ 기업에 밀려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AI를 결합한 클라우드 사업(Oracle Cloud Infrastr ucture·OCI)에서 막대한 규모의 수주 잔고를 쌓았다는 사실에 AI 산업 성장성을 대표할 ‘새로운 엔비디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 칩 탑재, 오픈AI 선택받아

오라클 주가는 지난 10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전 거래일보다 35.97% 치솟아 주당 334.7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한때 상승 폭이 43.15%까지 확대되면서 시가총액이 9690억 달러(약 1350조7860억원)까지 불어났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주가 상승 폭에 대해 1977년 설립된 오라클이 92년 이후 33년 만에 최대 일간 상승 폭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오라클이 같은 날 발표한 실적 보고서에서 예상치 못한 막대한 규모의 수주 잔고를 밝히며 수급이 몰렸다. 수주 잔고는 아직 매출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이미 계약을 마친 규모로, 이를 통해 미래 실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오라클은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OCI) 부문에서 수주 잔고를 뜻하는 ‘잔여 이행 의무(Remaining Performance bligation·RPO)’가 4550억 달러(약 631조9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9%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프라 캣츠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추가 계약을 다수 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주 잔고는 5000억 달러를 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라클은 기업 대상으로 정보통신(IT) 수요에 대응해 클라우드와 하드웨어,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다. 이번에 막대한 수주 잔고를 기록한 OCI는 아마존 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과 경쟁하는 클라우드 플랫폼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인터넷을 통해 서버와 저장 공간, 소프트웨어를 빌려 쓰는 서비스다. 기업이 직접 서버를 관리하지 않아도 데이터를 저장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 오라클은 후발주자이지만 챗GPT 운영사 오픈AI와의 3000억 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는 클라우드 업계 최대 규모 계약이다.

오라클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로 승부를 봤다. 당장 이익률은 낮아지지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오라클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경쟁 서비스인 AWS와 비교하며 “같은 성능과 용량에도 더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엔비디아의 최신 AI GPU(그래픽 처리 장치)인 블랙웰(Blackwell) ‘GB200’가 적용됐다는 것도 OCI의 차별점이다. GB200은 엔비디아의 전작인 ‘H100’보다 추론 능력은 5배, 데이터 처리 능력은 18배나 빠르지만 발열 문제로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 고객사들은 GB200의 발열 문제로 H100을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발열 문제가 해결된 GB200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오라클은 데이터센터 설계를 새롭게 해 GB200의 발열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했다.

투자은행 29곳이 ‘매수’ 의견

올해로 49년 차를 맞은 오라클은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과 밥 마이너(Bob Miner), 에드 오츠(Ed Oates)가 설립했다. 처음에는 ‘SDL(Software Devel opment Laboratories)’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를 따내며 회사 이름을 지금의 오라클로 바꿨다. 오라클은 첫 번째 고객인 CIA의 일감을 따낼 때 당시의 프로젝트 이름이다.

오라클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최초 상용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를 출시한 회사다. 90년대는 금융과 통신 등 대형 기업 고객을 확보하며 데이터베이스 분야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2000년대부터 전사적 자원 관리(ERP)와 고객 관계 관리(CRM) 등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오라클은 2016년에야 OCI를 출시하며 클라우드 서비스를 내놨다. 선두주자인 아마존 AWS보다 10년이나 늦었지만 엔비디아와 오픈AI와의 협력 등으로 클라우드와 AI 산업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오라클은 국내 투자자에게 널리 알려진 기업은 아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국내 투자자는 오라클 주식을 약 5667억원어치 가지고 있다.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 순위로는 48위다. 1위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약 32조6009억원)와 비교하면 미미한 규모다. 오라클 시총이 미국 기업 중 10위 안팎을 오가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14일 기준 오라클에 투자의견을 낸 42개 투자은행 중 29곳이 ‘매수’ 의견을 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