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남자부 컵대회가 개막 하루 만에 대회 취소 결정을 번복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국제배구연맹(FIVB)으로부터 대회 개최 승인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한국배구연맹(KOVO)의 안일한 행정은 도마 위에 올랐다.
KOVO는 “오늘 새벽 FIVB로부터 컵대회 남자부 경기를 조건에 맞춰 개최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다”고 14일 밝혔다. KOVO는 불과 몇 시간 전인 이날 자정 FIVB로부터 대회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자부 경기의 전면 취소를 발표했다가 재개를 알렸다.
FIVB는 이번 대회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KOVO 측에 컵대회를 위한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 제한, 외국팀 및 외국인 선수 참가 불허, 세계선수권대회 등록 선수의 출전 불허, 컵대회가 정규리그에 어떠한 영향도 끼쳐선 안 된다 등 4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대회 초청팀 자격으로 참가한 나콘라차시마(태국)는 공식 경기를 치르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나게 됐다.
사태의 발단은 ITC였다. 각국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기용하기 위해선 FIVB로부터 ITC를 발급받아야 한다. KOVO는 이번 컵대회에 참가할 예정인 외국인 선수들의 ITC 발급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지난 12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진행되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컵대회 기간이 겹치는 것도 문제였다. FIVB는 세계선수권 이후 최소 3주의 휴식기를 두고 리그를 진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FIVB는 지난 12일 KOVO에 컵대회 개최 중지를 권고하면서 강행 시 징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KOVO는 쟁점 사항인 외국인 선수들의 출전을 제한했지만, FIVB로부터 대회 승인은 받지 못한 채 대회를 개최했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추가로 발생했다. FIVB의 승인 조건에 세계선수권 예비 명단 승선 선수도 등록 선수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선수 풀이 좁아진 일부 구단은 컵대회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연맹에 전달했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리베로 박경민이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고 있는 가운데 컵대회에 출전 가능한 선수는 임성하뿐”이라며 “임성하도 예비 명단에 포함돼 컵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제한된 선수로 대회를 풀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KOVO는 FIVB의 승인을 받은 만큼 대회를 정상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KOVO 관계자는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무철 사무총장이 오늘 아침 필리핀으로 향했다”며 “대다수 구단은 기존대로 컵대회 참가 의사를 밝혔다. 현대캐피탈의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다만 대회 의미는 이미 퇴색됐다. 사전 예매된 남자부 모든 경기는 전액 환불 처리됐고, 잔여 경기는 입장료 없이 무료 관람으로 변경됐다. 여자 세계선수권대회가 지난 7일 막을 내린 가운데 오는 21일 예정된 컵대회 여자부 경기도 정상 개최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KOVO는 “숱한 번복으로 혼란을 일으킨 점을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대회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