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서 빵 몇 개만 골라도 2만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빵이 사치재가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의 빵 가격은 세계적으로도 높다. 왜일까. 원재료 대부분이 수입산이라 글로벌시장과 환율 영향을 자체적으로 통제하기 힘들다. 주로 카페에서 디저트로 소비되면서 자영업자의 고정비 부담까지 가격에 반영된다. 구조적인 측면이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외부 상황이 개선돼도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비자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990원 소금빵을 내놓은 경제 유튜버 ‘슈카’의 실험이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빵 물가지수는 138.61(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6.5% 상승했다. 지난 3월 6.3%로 급등한 뒤 무려 6개월 연속 6%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달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에 그쳤다. ‘빵플레이션’ 규모는 평균 물가 상승세의 약 4배에 이른다.
해외 주요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빵값은 높은 수준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빵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29로 미국(125), 일본(120), 프랑스(118)를 모두 제쳤다. 한국의 식빵(100g 기준) 가격은 703원으로, 조사국 가운데 가장 비쌌다. 글로벌 생활비 통계 사이트 눔베오의 이달 집계에서도 국내 식빵(500g) 평균 가격은 2.98달러(약 4150원)로 124개국 중 11위였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원재료 수급이 안정적이지 않은 게 가격을 올리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24년 식품산업 정보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빵·과자류 원료 가운데 국산 비중은 9.7%에 불과했다. 글로벌 기후위기로 원재료 가격이 요동치면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직격탄을 받는다. 가격을 자체적으로 통제할 여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원재료 가격이 내려도 빵값은 오름세”라는 점을 비판한다. 밀, 설탕, 버터 등 원재료 가격이 안정세를 보여도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오는 지적이다.
일본과의 빵 가격 격차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 식빵(100g)의 평균 가격은 481원으로 한국보다 약 1.5배 저렴하다. 일본 또한 원재료 수입 비중이 높지만 시장 구조가 한국과 다르다. 일본은 양산빵 비중이 65.8%에 달하고, 주로 편의점에서 소비된다. 대량생산과 편의점 유통망을 활용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며 안정적인 가격이 형성됐다. 반면 한국은 베이커리 전문점 매출 비중이 65.7%에 이른다. 카페 문화와 디저트 중심 소비가 결합해 인건비·임대료 부담이 더해지는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됐다.
빵값 논쟁은 유럽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독일계 대형마트 리들과 알디가 0.29유로(약 470원)짜리 초저가 바게트를 출시하자 전통 제빵업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바게트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반발했다. 기계화·대량생산이 가능케 한 초저가 전략을 놓고 ‘가격’과 ‘전통’ 사이의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에는 정치권과 공정위도 빵값 논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4월부터 농심·오리온·롯데웰푸드 등 주요 식품업체의 빵·과자류 출고가를 대상으로 담합 여부를 조사 중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빵 시장의 독과점 문제를 점검하겠다”고 밝혀 제도적 대응 가능성도 커졌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