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속 편모 가정에 희망을… 영육의 양식을 전하다

입력 2025-09-15 03:03
최인호·한지선 선교사 부부가 지난해 성탄절 케냐 마르사빗주 코어에서 렌딜레 마을 과부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 선교사 제공

케냐 북부 마르사빗주 코어 지역, 유목 생활을 하는 렌딜레 부족 마을엔 쉽게 분해하고 재조립할 수 있는 이동식 원형 초가가 모여 있다. 나무 뼈대에 천 조각과 종이상자를 덮은 9.9㎡(약 3평) 남짓 초가 내부는 환기가 되지 않아 숨 막히게 덥다. 지난해 12월 남편을 설사병으로 잃은 네베요 하파레(22)는 이 집에서 자폐를 앓고 있는 둘째를 포함한 두 아들을 키운다. 그는 19살에 50대 남편에게 시집왔다가 홀로 됐지만 렌딜레 전통에 따라 재혼할 수 없고 생계의 길도 막혔다. 네베요는 18년째 이 지역에서 사역해 온 최인호·한지선 선교사 부부에게서 설탕과 옥수수 콩 한 포대를 받아 끼니를 이었다. 최근 현지에서 만난 그는 힘없이 미소지으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만 말했다.

‘과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잇는 생명줄

네베요 가정을 도운 건 최 선교사 부부가 운영하는 ‘과부 지원 프로그램’이다. 각 마을에서 선정된 어려운 편모 가정에 한국교회에서 온 후원금으로 월 3만원씩 생활비를 지급하는 것이 기본 프로그램이다. 현재 270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때와 필요에 따라 옥수숫가루 등 식량을 지급하기도 한다. 매달 마지막 날, 센터에 모여 생활비를 나눌 때 함께 예배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매주 금요일엔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마마기도모임’을 갖는다.

이 사역은 2018년 고보레 마을에서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메이싼 고보레(41)를 만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나이 든 남편이 병에 걸려 먼저 죽거나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독사에 물리는 등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 이 지역에서 홀로 남은 여성에게 절실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메이싼은 한국교회 후원으로 의족을 착용하고, 자녀들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최 선교사는 “혼자 된 십대도 흔한데, 대부분 부족어밖에 몰라 다른 지역으로 나가기도 어렵다”면서 “기본 생활을 유지하게 돕는 게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지원하는 생활비도 넉넉하지 않아 여전히 이웃에게 끼니를 빌어먹는 경우도 많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당신을 잊지 않으셨다’는 말에 눈물 흘리며 감사하곤 한다”고 말했다.

10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며 지난해부터 도움을 받게 된 미샐론 오르구바(50)는 “예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선교사들과 모임을 통해 신앙이 깊어지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역의 열매, 자녀들의 부르심

최근 새로 연결된 한 여성과 나란히 선 모습. 한 선교사 제공

최 선교사 부부는 2007년부터 코어를 오가다 2011년 세 자녀와 정착했다. 2010년 당시 현지 교회로부터 결연 아동이 전갈에 물려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 계기였다. 최 선교사는 “(아이에게) 급식과 교복은 지원했지만 예수님을 전하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날 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보낸 이유가 그것인데’라고 말씀하신 것 같아 사역 우선순위를 ‘생존 지원’에서 ‘복음 전파’로 바꿨다”고 했다. 한 선교사도 그 시기 “‘지선아, 세상은 잠시다. 나와 뜨겁게 살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전기도 수도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신앙 가운데 자란 세 자녀 모두 현재 선교의 꿈을 품고 있다. 케냐 선교사 자녀 중 처음으로 의대생이 된 큰아들 성민(24)씨는 “병원에 가지 못해 쉽게 목숨을 잃는 친구들을 보며 사람을 살리는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둘째 성아(20)씨는 미국 칼빈대 간호대에 진학해 매일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사역을 돕고 있다. 막내 성연(15)양은 케냐에서 태어나 자라며 “부모님이 ‘편히 살 수 있는데 왜 사막에 계실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꼭 필요로 하시는 자리임을 알게 됐다”며 “사람들을 돕는 부모님의 삶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한 선교사는 “연중 비 내리는 날이 열흘도 되지 않는 코어에서 지난해 큰비가 사흘 이상 내리자 노란 꽃이 만발했는데, 주님이 그 모습을 통해 감동을 주셨다”면서 “코어의 영혼들에도 영적 단비가 내려 열매 맺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서 한 영혼이 변화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국교회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당장 없더라도 인내하며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어(케냐)=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