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복지 국가인지를 놓고 논란이 많지만 현대 한국인이 복지 제도의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나 의무·무상 교육을 받고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가난해지면 기초생활 보장의 뒷받침을 받고 직장을 잃으면 실업 수당을 받으며 나이 들면 연금과 장기요양 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복지 제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려는 시도로 ‘생애 주기별’ ‘맞춤형’ 등의 방향이 늘 거론된다.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가장 필요한 집단은 장애인, 특히 중증 장애인이다.
어린 시절 중증 장애아들은 당사자와 가족 모두 좋은 보육이 절실하다. 그런데 2022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장애 아동은 22.8%, 그중 자폐성 장애아는 16.6%였다. 중증일수록 어린이집에서 거절당하는 경험이 많다.
특수 교육법에 의해 특수 교육 대상자는 3세부터 17세까지 의무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장애인을 위한 기본적인 시설과 지원 미흡, 특수 교사 등 자원 부족 등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학교를 마치면서 중증 장애인에게는 위기가 온다. 특히 고교를 마친 후 진학도 취업도 못 하게 되면 돌봄 부담이 갑자기 커진다. 이들을 받아 줄 수 있는 복지관은 1년 이상, 심지어 3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곳이 많다. 중증이나 발달장애, 뇌병변 장애인은 거절당하는 일도 많다. 이때 시설에 입소하기도 한다.
학교를 마치면 누구나 취직을 하려고 한다. 중증 장애인에게 취업은 그 자체가 돌봄이다. 모든 젊은이의 취업이 어려운데 장애인 취업이 쉬울 리 있겠나. 중증일수록 자리가 없다. 이번에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저 임금조차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월급을 받는다는 자체만으로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들을 보면 속이 쓰리다.
65세를 넘어 노년이 되면 이번에는 장애인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노인 정책의 대상이 된다. 장애인 복지와 노인 복지 제도는 별도의 과정으로 형성돼 왔기 때문에 이것저것 차이가 크다. 노인이 되는 것은 또 한 번의 위기다. 중증 장애인의 일생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생애 주기별 맞춤형 ‘기다림’과 ‘거절’, 가족들의 ‘눈물’인 셈이다.
(재)돌봄과 미래,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