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 구호 사라진 명동… 상인들 “이제야 살 것 같다” 안도

입력 2025-09-15 02:12
의류 매장과 노점이 늘어선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지난달 31일 외국인 관광객 등으로 붐비고 있다. 혐중 집회 제한 조치가 최근 이뤄지면서 이곳 상권이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권현구 기자

1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는 모처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간판 불빛 아래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거리 음식점 앞에도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국 OUT’ 등 혐오 구호가 확성기를 타고 쏟아졌지만 이날 시위대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40대 박모씨는 “영어나 중국어 구호는 외국인들이 바로 알아들어 부끄러웠다”며 “집회가 열릴까 걱정했는데 이제야 살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최근 명동의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열리던 혐중 집회 제한 조치에 나서면서 한때 긴장이 고조됐던 이곳 상권도 안정을 되찾고 있다. 이날 만난 상인들은 경찰의 제한 조치에 안도감을 나타냈다. 명동에서 17년째 거리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55)는 “외국인 손님들이 인종차별 구호에 놀라 음식을 먹다 나가곤 했다”며 “이제 조치가 시행됐으니 앞으로 명동에서 혐중 집회가 열리면 영상 채증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혐중 집회는 12·3 비상계엄 이후 기승을 부리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주춤했지만, 지난 5월쯤부터 중국 관광객이 몰리는 명동에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등은 경찰에 시위를 제한해 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최근에야 경찰은 시위대에 대해 명동 이면도로 진입 금지, 행진 경로 변경, 주한 중국대사관 100m 이내 접근 금지 등을 포함한 제한 통고를 내렸다. 관광객을 향한 욕설·모욕적 언행도 금지됐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혐중 집회에 대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깽판”이라고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상인들은 오는 29일부터 시작되는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앞두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50대 상인 김모씨는 “요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를 보고 오는 외국인도 많다”며 “앞으로는 더 편한 마음으로 명동을 찾을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명동복지회 이강수 총무는 “혐오 집회는 강력히 규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명동 진입이 막힌 극우 성향 단체들은 잠실 등 서울의 다른 도심에서 여전히 혐중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는 보수단체 ‘자유대학’ 주최로 800명이 모인 혐중 성격의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중국 혐오 표현이 반복된 노래를 부르고, ‘중국 무비자 입국은 안전 위협’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흔들었다. 최근 총격으로 숨진 미국 극우 인사 찰리 커크를 추모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상권을 옮겨다니는 게릴라성 혐중 집회에 대해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 표현 규제는 표현의 자유 일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을 겨냥한 차별적 언행을 막는 장치”라며 “인종차별이나 혐오 표현에 대한 명확한 윤리 기준을 마련해 경찰이 집회·시위를 제재할 수 있도록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