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우파 활동가 찰리 커크를 암살한 범인은 ‘벨라 차오(Bella ciao)’라는 단어가 적힌 탄환을 현장에 남겼다. 벨라 차오는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파시즘에 저항하던 이들이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벨라는 ‘아름다운 그대’, 차오는 ‘안녕’이란 의미로 파시즘에 맞서려고 떠나는 젊은이가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내용이다. 자신이 죽으면 아름다운 꽃 그늘 아래 묻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노래는 비장한 내용과 달리 경쾌한 리듬에 반복되는 멜로디인 ‘벨라 차오 차오 차오!’라고 외치는 부분이 귀에 쏙 들어온다.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어 전 세계 시위 현장에서도 자주 불려지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반전 집회 단골 노래가 됐고, 2019년 홍콩 민주화시위 때도 인기가 많았다. 2020년 코로나19 봉쇄 시기엔 이탈리아인들이 바이러스를 이겨내자면서 발코니에서 부르곤 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 국정농단 규탄 집회를 비롯해 여러 행사에서 불려지고 있다.
이번에 미국 암살범은 ‘파시스트, 날 잡아봐’라는 글도 남겼는데 마치 자신을 반파시즘 저항군으로 착각이라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가 정치적으로 마음이 안 든다고 요즘같은 민주주의 시대에 극단적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벨라 차오에는 자신이 죽으면 ‘자유를 위해 죽은 저항군의 꽃으로 불러 달라’는 내용도 나오는데, 이번 암살을 자유를 위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생각이 다르다고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또 다른 압제일 뿐이다. 벨라 차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악용돼 앞으로 선한 행동가들이 이 노래를 부르기 주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 사건은 점점 더 극단화되고 있는 한국 정치에도 경종을 울린다. 보수든, 진보든 상대를 상종하지 못할 존재로 악마화하려는 경향이 일상이 됐다. 예전엔 소수 독설가만 그랬지만 언젠가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증오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런 식의 혐오 정치가 팽배해 있는데, 과연 우릴 민주주의 모범국이라 할 수 있을까.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