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 후속 협의가 50일 가까이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영점을 맞춰가는 협상”이라면서도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미 관세 협상의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관세 협상을 ‘토털 패키지 협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양국이) 목표 지점까지 가는 협상이 아니라 서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최적의 상태와 균형을 맞추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서로 다른 조건에서 영점을 맞춰가는 협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환율이나 한국의 여러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에서 다양한 조건을 변경해가며 서로 계속 맞춰가는 상황”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는 방어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국익을 가장 잘 지키는 선에서 여려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을 방문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회동에서 별다른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 장관은 취재진과 만나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러트닉 장관과 만나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의 구조, 방법, 이익 배분 방식 등 세부 내용 등을 놓고 합의 도출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국의 ‘통상 수장’이 직접 만났음에도 협의 결과에 대한 설명이 없어 핵심 쟁점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하루이틀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며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정도”라고 전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0일 무역 협상에 전격 합의했지만 한국의 3500억 달러(약 486조원) 대미 투자펀드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일 협의처럼 투자금 회수 이후 펀드 수익 대부분을 가져가는 방안을 미국이 내세우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 모델을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일본은 미국과 통화스와프도 맺고 있고, 엔화도 기축통화여서 일본을 예로 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미국도 점점 강경해지는 분위기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1일 미 CNBC에 나와 “유연함은 없다.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거나 (합의 이전 수준인 25%의) 관세를 내야 한다”며 한국을 압박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국익에 반하는 서명은 하지 않겠다고 말한 만큼 근시일 내에 끝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최승욱 윤예솔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