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조지아 구금 사태 끝이 아니다

입력 2025-09-15 00:38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다 체포돼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지난주 무사히 돌아왔다. 이들이 귀국하며 털어놓은 1주일의 구금 생활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끔찍했다. 국민을 분노케 한 수갑과 쇠사슬 연행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근로자들은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공간에 붙어 앉아 먹고 자고 용변도 해결해야 했다. 곰팡이 핀 침대와 악취 나는 물, 시계도 없고 바깥도 볼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국이 운영한 외국인 격리시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정부는 무사 귀국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범죄자 취급한 미 이민 당국에 정식으로 항의해야 한다. 이번에 귀국한 316명 중 절반 정도가 소지했던 단기 상용비자(B-1)는 ‘해외에서 제작하거나 구매한 장비의 설치 또는 수리’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 적법한 비자인지 해석차가 있는 문제다.

300명 넘는 한국인 근로자가 한꺼번에 빠져나간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은 내년 가동을 앞두고 내부 전력망과 배선 등 막바지 설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63억 달러(약 8조8000억원)를 투자해 건설 중이던 이 공장은 연간 30GWh, 전기차 약 30만대 분량의 배터리셀을 생산해 현대차에 공급할 계획이었다. 공사가 중단된 공장에 작업자들을 다시 투입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최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미 자동차 전문매체 행사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야 한다. 공장 건설 단계에는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기술과 장비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자체 인력만으로 제조업을 이끌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미 노동통계국(BLS) 8월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 근로자는 1270만명으로 전체 인구(3억4200만명)의 3.7% 수준이다. 제조업 일자리가 단순 생산에서 고도의 기술력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지만 미국에는 이를 충족할 숙련된 인력 풀이 매우 좁다. 그 틈을 외국의 전문기술 인력이 메워줘야 하는데, 미 정부의 자국민 우선 고용 원칙과 까다로운 비자 발급 제도가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미국에 진출한 기업과 협력사들은 비자 문제로 언제든 불법 취업자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다. 한·미가 워킹그룹을 통해 비자 발급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지만 언제 논의가 시작될지 불분명하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비자 발급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 자체가 개편 논의의 동력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게 트럼프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공교롭게도 미 정부는 구금됐던 한국 근로자들이 귀국한 날 관세를 무기 삼아 한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방송에 출연해 “한국은 그 협정(한·미 간 무역협정 지칭)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유연함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48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한다는 무역협정에 합의했는데, 실무협의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종 사인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구금 사태 후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불안감이 커졌음을 지적하며 이 문제를 지렛대 삼아 협상을 이어가려던 정부 구상과는 분위기가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 바람대로 ‘비자 리스크’가 단기간에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권지혜 산업1부 차장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