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살아남았지만 동력 상실·갈등 증폭

입력 2025-09-14 18:26
대구시의회 전경. 국민일보DB

대구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조례’가 논란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유명무실한 조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 우상화에 반대하는 지역 시민단체들과의 갈등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대구시의회는 최근 열린 본회의에서 주민 청구로 상정한 ‘대구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 폐지안’을 부결시켰다. 재적 시의원 33명 중 국민의힘 소속 3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 1명만 찬성표를 냈다.

표결 전 이미 폐지 조례안이 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념사업 조례안 통과에 적극적이었던 국힘 소속 시의원들이 자신들의 결정을 뒤집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본회의에 앞서 열린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서도 소속 시의원 6명 중 국힘 시의원 5명이 모두 폐지 조례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민 청구로 올라온 안건이라 규정에 따라 상임위 의견과 상관없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박정희기념사업 조례안은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던 사안이다. 대구시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 임기 중이었던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기념하는 사업 추진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고 같은 해 12월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다. 이에 대한 반발로 지역 시민단체들이 대구시민 1만4000여명 서명을 받아 폐지 조례안을 청구했다.

기념사업 조례안은 남았지만 사업이 재추진될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전망이다. 홍 전 시장 조기 사퇴 후 추가 동상 설립 등 후속 사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동대구역 광장 박정희 동상 설치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국가철도공단과의 소송도 진행 중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동상 철거 등의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 권한대행 체제에서 논란이 많은 사업을 굳이 재개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도 대구시 내에서 감지된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기념사업 찬성 측은 산업화 공로 등 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공과를 균형 있게 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독재 논란이 있는 박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한다.

‘박정희 우상화 사업 반대 범시민 운동본부’는 14일 “대구시의회가 조례안 심사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했다”며 “시민의 뜻을 거듭 묵살한 대구시의회는 결정에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어 “기념사업 조례안의 완전한 폐지와 동상 철거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