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 동의하지만
송전망·간헐성 극복 못하면
AI 산업 정상 작동 불가능해
송전망·간헐성 극복 못하면
AI 산업 정상 작동 불가능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한 ‘당장 엄청난 전력’의 사용처는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일 것으로 추정된다.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일반적인 데이터센터와 비교해 같은 용량에도 최대 10배 정도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최대 7조원이 투자되는 SK 울산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는 2년 뒤인 2027년이면 절반 정도 건설이 완성된다. 4년 뒤인 2029년이면 완공하고 국내 최대라는 위용을 자랑하게 된다. 해당 기간을 감안했을 때 전력 공급 여력 확충이 급하다. 이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데 최하 15년이 걸리는데 지을 곳이 없다”고 했다. 전력 생산 설비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 대통령의 설명은 타당하다.
하지만 시선을 송·배전망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력이 산업을 돌리는 ‘혈액’이라면 송·배전망은 ‘혈관’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신속하게 확충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동해안과 동서울을 잇는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꼽힌다. 한국전력이 2019년 완공하겠다고 발표했던 이 사업은 6년이 지난 지금도 1차 개통조차 못했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앞길이 막혀 있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동해안에 있는 발전 시설들은 전력 생산 여력이 있는데도 개점휴업을 밥 먹듯 한다.
이 상황은 AI 구동의 핵심 요소이자 한국의 수출 최대 효자인 반도체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 공급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 2027년부터 가동을 시작할 계획인 이 반도체 집적단지의 필요 전력 수요는 10기가와트(GW) 정도로 추산된다.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은 산단 인근에 신규 건설할 3GW 규모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각 지역에서 송전선로를 통해 끌어오는 구상을 진행 중이다. 그중 하나가 동해안 송전선로다. 더 큰 문제는 동해안 송전선로만 해결한다고 해서 ‘상황 종료’를 외칠 수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단을 위한 송전선로 구상 중 하나인 전북에서 올라오는 송전선로도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하다. 전남 지역 재생에너지는 포화 상태지만 이를 갖다 쓸 혈관 생성은 요원한 상태다.
설령 이 문제를 풀어낸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점인 ‘간헐성’을 단기간에 해소할 방안이 마뜩잖다. 석탄화력, LNG, 원자력발전과 달리 재생에너지는 전력 생산량이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뒤죽박죽이다. 이를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쓴다는 구상이지만 현존 기술로는 10~12시간 정도밖에 저장이 불가능하다. 즉 구름이 대폭 껴서 태양광이 불가능하거나 바람이 안 불어 풍력이 멈추는 시간이 12시간을 넘어가면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 전력이란 혈액을 생산하는 심장이 불완전체인 셈이다. 향후 기후변화가 극심해질수록 이 불확실 요소는 더욱 큰 폭탄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심장 박동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생성되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산업에 공급하는 기능이 현재로선 없다. 이를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게 과연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을 지우기가 힘들다.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대의 자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대의를 이루려면 그만큼 채워야 할 요소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간과된 게 아닌가라는 우려가 지워지지 않는다. 여러 에너지를 균형 있게 쓰는 ‘에너지 믹스(Energy Mix)’가 우선된 후에야 대의는 힘을 얻는다. 대의를 충족하는 대신 산업이나 국민들이 수시로 단전을 경험해야 한다면 그게 과연 민생이고 성장일 수 있겠는가. 이번 정부가 에너지라는 ‘백년대계’를 이상에 치우쳐 결정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