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어딘가 어긋나 있는 마음, 불쑥 튀어 올랐다가 깊게 가라앉는 생각, 너무 미묘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온통 사로잡히게 되는 느낌 같은 것. 살면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감정이나 생각을 시를 읽다 보면 꼭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꺼내지지 않았던 마음이 비로소 언어의 옷을 입게 된 것만 같다. 오래도록 지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다. 시집을 꺼내 읽기 참 좋은 구월이다.
최근 출간된 김승일 시인의 청소년시집 ‘나 우는 연기 잘하지’(창비교육)를 읽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나 내면 앞에 서 있을 때, 조금은 엉뚱하고 웃기고 때로는 슬픈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바라보는 화자를 만났다. 그래서 덩달아 웃게 되기도, 슬퍼지기도 했다. 화자의 목소리를 듣다가 ‘다음’의 시간을 상상하기도 했다. ‘샌들’이라는 시에선 해변에서 놀고 나올 때의 정황이 그려진다. 샌들에 묻은 모래를 닦으러 다시 바다에 들어가고, 나오면 모래가 또 묻고, 또 파도에 씻으러 바다로 가는 것을 반복한다. 그렇게 “영원히 샌들 씻는 사람”이 되었다가, 화자는 샌들을 씻을 때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영원히 반복하지는 않고, “마지막에는 언제나/ 씻은 샌들을 손으로 들고/ 맨발로 걸어” 나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선명하게 바라보고 인정하면,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가게 된다. 다른 방향의 삶이 펼쳐진다.
시집의 마지막엔 시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내 시의 주인공들은 고백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고백한다. 고백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고백한다. 내가 계속 시를 쓰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시인은 말한다. 어설프고 연약하고, 초라하더라도. 세상의 논리와 딱 맞지 않고, 어딘가 이상하고 어긋나고 낯설어 보여도. 그 모습을 감추거나 침묵하지 않게, 당황해 빨개진 얼굴이 되더라도 고백할 수 있도록. 시인은 시를 통해 먼저 고백하고 있다.
안미옥 시인